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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03 퇴계가 꿈꾼 자연
- 백서른여섯 번째 이야기
2016년 4월 28일 (목)
퇴계가 꿈꾼 자연

꽃은 바위 벼랑에 피고 봄은 고요한데
새는 시내 숲에서 울고 물은 졸졸 흐르네
우연히 산 뒤에서 아이 어른들 데리고
한가히 산 앞에 와서 지낼 곳을 물어보네

花發巖崖春寂寂
鳥鳴澗樹水潺潺
偶從山後携童冠
閒到山前問考槃

이황(李滉, 1501∼1570)
『퇴계집(退溪集)』권3
「계상(溪上)에서부터 걸어서 산을 넘어 서당에 이르다[步自溪上踰山至書堂]」 





          


  인간은 늘 자연을 꿈꾼다. 시인은 자연을 관조하거나 그 속에서 노닐며, 특유의 감수성과 육감으로 자연의 몸짓을 느끼고 교감하여 하나의 우주를 창조한다. 그리고 그 우주를 통해 우리도 새롭게 꿈을 꾼다.

  퇴계 이황은 자연을 그 무엇보다 좋아하였다. 그러나 단순히 세상을 뒤로 하고 자연에 묻혀 고상한 삶을 추구하려는 것도, 그렇다고 도의(道義)를 쫓아 마음을 기르려는 것도 아님을 일찌감치 천명하였다. 시인의 낭만이나 도가의 허무주의가 아닌, 평생 추구한 도학(道學)의 이법(理法)이 어우러진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자 했고 그와 하나가 되고자 하였다.

  이 시는 퇴계의 나이 61세 3월 그믐에 서재인 계재(溪齋) 남쪽에서부터 제자 이복홍(李福弘), 이덕홍(李德弘), 금제순(琴悌筍) 등과 함께 걸어서 도산(陶山)의 서당으로 넘어오면서 지은 시이다. 시인은 봄날 바위 벼랑에 핀 꽃, 시내 숲에서 우는 새, 졸졸 흐르는 냇물 등 눈에 들어오는 고요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봄 풍경과 그 속에 하나로 어우러진 인간의 모습을 잔잔하게 그려내었다.

  그런데 그때 동행하였던 이덕홍은 이 시를 두고 ‘기수(沂水) 가에 노니는 즐거움’이 있으니, 바로 대자연의 이법이 일상생활 중에 조화롭게 흘러넘치는 경지가 담겨 있다고 하자, 퇴계는 그런 의미가 대략 있긴 하지만 그 말이 조금 지나치다고 대답하였는데, 그렇게 보면 이 시는 다시금 새로운 층위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겠다.

  ‘기수 가에 노니는 즐거움’이란 『논어(論語)』에 나오는 유명한 고사이다. 공자(孔子)가 제자들에게 각자의 포부를 말해보라고 하자, 증점(曾點)은 세속적 욕망을 드러낸 다른 제자들과 달리, “늦은 봄에 봄옷이 다 지어지면 어른 대여섯, 아이 예닐곱을 데리고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습니다.” 하였다. 이에 대해 주자(朱子)는 사람의 잘못된 욕심인 인욕이 다하고 하늘의 올바른 이치인 천리가 유행하여 천지 만물과 지극한 화해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 최고의 찬사를 표명하였다. 이 경지를 그는 정명도(程明道)의 말을 빌려 ‘요순(堯舜)의 기상’이라고도 하였다.

  꽃은 꽃대로 새는 새대로, 무르익은 봄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배타하지 않고 대자연의 이법을 드러낸다. 그 속에서 퇴계는 평생의 스승 주자가 꾸었던 요순을 꿈꾸었을까. 이것이 바로 퇴계가 지나치다고 한 그것일까. 퇴계를 따라 산수 자연의 완연한 봄을 만끽하며 요순을 꿈꾸어 본다.

 

글쓴이 : 정동화(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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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聖枝: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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