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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nd's Feet on High Places
아악(雅樂)과 속악(俗樂)의 차이 관상기도, 명상수행,불가 또는 도가 기공으로득도하고자 한다면 참고하세요!^^ 《논어(論語)》 ‘태백(太白)’에서 공자(孔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詩)로 감흥을 일으키고 예(禮)로 행동기준을 삼고 음악으로 성정을 완성 시킨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또한 공자(孔子)는 《논어(論語)》 ‘팔일(八佾)’ 편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배우기만 하고 사색하지 않으면 기만(欺瞞)하게 되고, 사색하되 학문에 정진하지 않으면 위태하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악기(樂記)》13장 '관능적인 음악'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정(鄭)나라 음악은 음란(淫亂)한 뜻이 넘치기 쉽게 하고, 송(宋)나라의 음악은 주연과 여색에 마음을 빠지게 하며, 위(衛)나라의 음악..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 나비의 꿈)' 제자백가 사상 中 《장자(莊子)》『제물론(齊物論)』에서 “언제인가 장주(莊周)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된 체 유유자적 즐기면서 자기가 장주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깨어보니 틀림없이 장주가 아닌가 도대체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지 아니면 나비가 장주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장주와 나비는 반드시 구분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물화(物化)라고 한다.” (昔者莊周夢爲胡蝶 栩栩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 則遽遽然周也 不知周之夢爲胡蝶 胡蝶之夢爲周與? 周爲胡蝶 則必有分矣. 此之爲物化.)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 春夜宴桃李園序 - 李白[唐]1) - 夫天地者萬物之逆旅, 光陰者百代之過客, 而浮生若夢, 爲歡幾何? 무릇 천지라는 것은 만물의 여관이고 시간은 백대의 나그네 이다. 뜬 구름 같은 인생 꿈과 같으니 즐거움은 얼마나 될까? 古人秉燭夜遊, 良有以也。 옛 사람들이 밤에 촛불을 들고 노닐었다는 것은 진실로 이런 까닭이었구나. 況陽春召我以煙景, 大塊假我以文章。 하물며 따듯한 봄이 나를 안개 드리운 경치로 부르고 자연이 나에게 문장력을 빌려 주었네. 會桃李之芳園, 序天倫之樂事。 복사꽃 오얏(자두)꽃 피어난 향기로운 정원에 모여 천륜의 즐거운 일을 펼쳐보자꾸나. 群季俊秀, 皆爲惠連, 吾人詠歌, 獨慚康樂? 뭇 아우들 준수하여 모두가 혜련이 되었으니, 홀로 내가 시를 노래함이 강락에게 부끄러운..
《서승경(西昇經)》 제8 天地章(천지장) 老子曰 : 天地與人物 本皆道之元 俱出於太素 虛无之始端 彷彿之精光 微妙之上玄 譬如萬里坑 下有淡流泉 視之甚濁微 徹見底沙難 窈窈而冥冥 不知所由然 亦如終老去 不見其靈魂 淳陰共和合 陽不能顯分 過往與甫來 視譬如見前 尙不能了理 安能知存亡 譬如音啞者 不能傳人言 爲聾彈宮商 其人豈能聞 才辯有其智 受敎如語傳 自謂通道情 情哀不能丹 是故失生本 焉能知道元 천지여인물(天地與人物) - 하늘과 땅과 더불어 사람이 있다. 노자(老子) 역시 천인지(天人地)를 삼원일체(三源一體)로 보았다. 하늘과 사람과 땅은 셋이면서도 한 몸으로 이론화(理論化)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도 신(神)이며, 인간도 신(神)이며, 동시에 땅도 신(神)으로 보아 삼신(三神)이라 했던 것이다. 천인지(天人地)의 삼원일체 사상..
노자(老子)의 《서승경(西昇經)》 제19 우제이장(右第二章) * 율곤(律坤) 이중재(李重宰)선생님 말씀입니다.《서승경(西昇經)》의 본문(本文) 중 우제이장(右第二章)은 제19장과 제20장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독자들은 이해하길 바란다. 특히 우제이장(右第二章)은 보는 바와 같이 관령(關令)인 윤희(尹喜)가 노자(老子)를 만난 후 노자(老子)가 듣고 기록한 문장이다. 關尹子曰 觀道者如觀水 是以聖人者 知道德混沌 玄妙同也 亦知天地淸靜 皆守一也 故與天同心而無知 與道同身而無體 而後天道盛矣 以制志意而還 思慮者也 去而不可逐 留而不可遣 遠者出於無極之外 不能窮之 近在於己人不見之 是以君子 終日不視不聽 不言不食 內知而抱玄 夫欲視亦無所見 欲聽亦無所聞 欲言亦無所道 欲食亦無所味 淡泊寂哉 不可得而味也 復歸於無物 若常能淸靜無爲 無自復..
노자(老子) 서승경(西昇經) [책소개] : 서승경(西昇經) 대자연의 진리와 신의 경지에 이르는 득도의 과정을 통해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담은 노자의 을 완역한 책. 노자 자신이 깊은 도를 쌓아 가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경고하는 서승장를 비롯해 39편을 실었다.第一 西昇章(서승장)第十四 深妙章(심묘장)第二十七 兵者章(병자장)第二 道深章(도심장)第十五 虛無章(허무장)第二十八 柔弱章(유약장)第三 善爲章(선위장)第十六 恍惚章(황홀장)第二十九 民之章(민지장)第四 愼行章(신행장)第十七 生置章(생치장)第三十 天下章(천하장)第五 道象章(도상장)第十八 爲道章(위도장)第三十一 意微章(의미장)第六 道生章(도생장)第十九 右第二章(우제이장)第三十二 在道章(재도장)第七 邪正章(사정장)第二十 右第二章(우제이..
장자(莊子)의 소요(逍遙) 제물(齊物)의 절대자유의 경지 「소요유(逍遙遊」의 사전적인 의미는 ‘소(逍)’는 이리저리 거닐다. ‘요(遙)’는 먼데서 멀리 떨어지다. ‘유(遊)’는 놀다, 즐겁게 지내다. 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장자(莊子)》내편(內篇)「소요유(逍遙遊」는 장자가 자신의 사상을 총 정리 한 것으로 절대적인 인간의 자유추구에 목표를 두고 그에 도달하는 방법을 논술한 것이다. 당시 유가의 사상에 지배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유가적 사유를 비판하여 유가(儒家)의 천명사상에 대한 반발, 무위자연을 최고로 제시하였다. 상식적인 생각과 세속적인 가치를 큰 소리로 비웃는 사상가 장자(莊子)는「소요유(逍遙遊)」첫 구절에서 이처럼 말한다. “北冥有魚 其名爲鯤。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化而爲鳥 其名爲鵬。鵬之背 不知其..
장자(莊子)의 소요(逍遙), 제물(齊物) 절대자유의 경지 사마천의《사기》에 의하면 장자는 BC 4세기 후반 전국시대(戰國時代), 송(宋)나라 몽현(蒙縣)인으로 현재 하남성(河南省) 동부 상구현(商邱縣)사람이다. 양(梁) 혜왕(惠王), 제(齊) 선왕(宣王)과 같은 시대에 살았으며 몽지방의 칠원리(漆園吏)라는 말단 관직을 지냈다. 전국시대는 전쟁과 살육, 권모술수와 극악무도한 패륜이 공공연히 행해지던 불안과 절망의 시대였다. 송나라는 약소국으로 약자의 비애와 고통, 모욕과 굴욕, 전란과 기아를 피해 피난을 해야 했던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자유를 사고한 것이 《장자》의 저술인 것이다. 《장자》- 잡편을 보면 아내와 제자가 있었고 가난해서 남에게 돈을 빌리러 간일도 있었으며(外物篇) 이곳저곳 기워 입은 옷으로 ..
귀거래사(歸去來辭) - 본문 귀거래사(歸去來辭) - 본문 - 도연명 - 歸去來兮, 田園將蕪胡不歸?돌아가자,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을 것인가! 旣自以心爲形役, 奚惆悵而獨悲?이미 내 마음을 육신을 위해 부렸으니 어찌 근심하고 슬퍼할 것인가?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지난일은 탓하지 않고 장래의 일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實迷途其未遠, 覺今是而昨非。사실 미혹되었어도 멀리 벗어나진 않아서 지금은 옳고 지난날이 그릇된 것을 깨달았네. 舟搖搖以輕颺, 風飄飄而吹衣。배는 흔들흔들 천천히 나아가고 바람은 산들산들 옷깃에 불어오는구나. 問征夫以前路, 恨晨光之熹微。길손에게 앞길을 물어보고 새벽빛이 희미한 것을 한스러워 한다. 乃瞻衡宇, 載欣載奔。이내 누추한 집이 보이니 기쁜마음으로 달려간다. ..
귀거래사(歸去來辭) 서문(序文) 귀거래사(歸去來辭) - 서문(序文) - 도연명(陶淵明)- 余家貧, 耕植不足以自給, 幼稚盈室, 甁無儲粟, 生生所資, 未見其術。 나는 집이 가난하여 농사지어도 자급이 부족하고 어린것들은 집에 가득한데 항아리에는 비축한 곡식이 없어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품을 해결할 방도를 찾을 수가 없었다. 親故多勸余爲長吏, 脫然有懷, 求之靡途。 친척과 친구들 다수가 내가 지방관리가 되길 권하였고, 꺼리낌 없이 마음에 품었어도 관직을 구할 곳이 없었다. 會有四方之事, 諸侯以惠愛爲德, 사방(진(晉) 안제(安帝) 원흥(元興), 의희(義熙) 년간 제후사이에 일어난 전란들)에 일이 있어 제후들이 은혜의 덕을 베풀었는데 家叔以余貧苦, 遂見用於小邑。 숙부께서 내가 빈곤하게 고생한다고 천거하시어 마침내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