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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사마천 사기(史記) (16)
Hind's Feet on High Places
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 66권》6편 - 「오자서(伍子胥) 열전」3 ※ 역사를 알면 간접경험을 통해 현실 생활에 도움이 됩니다. 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오자서(伍子胥) 열전」 五年而楚平王卒¸ 初, 平王所奪太子建秦女生子軫, 及平王卒, 軫竟立爲後, 是爲昭王¸오년이 지나서 초나라 평왕이 죽었다. 처음에, 평왕이 태자건에게서 빼앗은 진나라 여자의 아들 진(軫)이 평왕이 죽자 후사를 이었는데 바로 소왕(昭王)이다. 吳王僚因楚喪, 使二公子將兵往襲楚¸ 楚發兵絶吳兵之後, 不得歸¸오왕 료는 초나라의 국상으로 인하여 두 공자들로 하여금 병사를 거느리고 초나라를 습격하게 하였고 초나라는 오나라 병사의 후미를 끊어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다. 吳王內空, 而公子光乃令專諸襲刺吳王僚而自立, 是爲吳王闔廬¸ 闔廬旣立, ..
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 66권》6편「오자서(伍子胥) 열전」2 ※ 역사를 알면 간접경험을 통해 현실 생활에 도움이 됩니다. 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오자서(伍子胥) 열전」 無忌言於平王曰.., “伍奢有二子, 皆賢, 不誅且爲楚憂¸ 可以其父質而召之, 不然且爲楚患¸” 무기가 평왕에게.., “오사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모두 인재이기에 주살하지 않으시면 초나라의 우환이 될 것입니다. 그 애비를 인질로 삼아 불러들이소서. 그렇지 않으면 초나라에 우환이 될 것입니다.”라고 아뢰었다. 王使使謂伍奢曰.., “能致汝二子則生, 不能則死¸” 왕은 오사에게 신하를 보내어.., “네 두 아들을 불러서 오면 살려주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죽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伍奢曰 “常爲人仁, 呼必來¸ 員爲人剛戾忍訽, 能成大事..
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 ․ 66권》6편「오자서(伍子胥) 열전」1 ※ 역사를 알면 간접경험을 통해 현실 생활에 도움이 됩니다. 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 ․ 66권》6편「오자서(伍子胥) 열전」1 伍子胥者, 楚人也¸ 名員¸ 員父曰伍奢¸ 員兄曰伍尙¸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운이고 운의 아버지는 오사, 운의 형은 오상이라 하였다. 其先曰伍擧, 以直諫事楚莊王, 有顯, 故其後世有名於楚¸ 그의 조부는 오거라고 불렸는데 강직한 간언으로 초장왕을 섬겨 세간에 알려졌고 그래서 그의 후손들은 초나라에서 유명해졌다. 楚平王有太子名曰建, 使伍奢爲太傅, 費無忌爲小傅¸ 초나라 평왕에게 태자가 있었는데 이름을 건이라고 하였다. 평왕은 오사를 태자태부로 삼고 비무기를 태자소부로 삼았다. 無忌不忠於太子建¸ 平王使無忌..
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 ․ 63권》3편「노자(老子) ․ 한비(韓非)열전」7 秦王悅之, 未信用。李斯, 姚賈害之, 毁之曰., 진왕은 기뻐하나 아직은 신용하지 않았다. 이사와 요고(姚賈)가 해코지하고자 비방하며., “韓非, 韓之諸公子也。今王欲幷諸侯, 非終爲韓不爲秦, 此人之情也。 “한비는 한나라의 공자입니다. 지금 왕께서 제후들을 병합(통일)하려 하시는데 한비는 결국 한나라를 위하지 진나라를 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는 인지상정입니다. 今王不用, 久留而歸之, 此自遺患也, 不如以過法誅之。 ”지금 왕께서 등용하지 않고 오래 억류하셨다가 돌려보내시면 이는 자연히 우환을 남기는 것이니 과실을 찾아내어 법대로 주살하시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말하였다. 秦王以爲然, 下吏治非。李斯使人遣非藥, 使自殺。 진왕은 그렇다..
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63권》3편「노자(老子) ․ 한비(韓非)열전」6 昔者彌子瑕見愛於衛君。衛國之法., 竊駕君車者罪至刖。 옛날 미자하가 위나라 군주에게 총애를 받았다. 위나라 국법에 ‘몰래 군주의 수레를 타는 자는 월형(발꿈치를 베는 형벌)에 처한다.’고 하였다. 旣而彌子之母病, 人聞, 往夜告之, 彌子矯駕君車而出。 이윽고 미자의 모친이 병이 나자 이 소식을 들은 사람이 미자에게 가서 알렸다. 미자는 군명을 빙자하고 주군의 수레를 타고 나갔다. 君聞之而賢之曰., “孝哉, 爲母之故而犯刖罪!” 군주가 듣고서 어질다 말하며., “효성스럽구나, 어머니를 위하여 월형 죄를 범했으니!”라고 하였다. 與君游果園, 彌子食桃而甘, 不盡而奉君。주군과 과수원에 놀러가서 미자는 복숭아를 먹어보니 달아서 먹던 것을 주군에..
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 ․ 63권》3편「노자(老子) ․ 한비(韓非)열전」5 凡說之務, 在知飾所說之所敬, 而滅其所醜。모든 유세에서 권장하는 것은 상대의 장점은 미화시키고 상대의 단점이나 과오를 제거할 줄 아는데 있다. 彼自知其計, 則毋以其失窮之., 自勇其斷, 則毋以其敵怒之.,그 자신이 그 계책을 안다면 그의 잘못을 추궁하지 말아야 하고, 스스로 단점을 용맹하다 하면 그를 적대하여 노하지 않게 하여야 하며., 自多其力, 則毋以其難槪之。자신이 능력이 많다고 느낀다면 곤란하다 생각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 規異事與同計, 譽異人與同行者, 則以飾之無傷也。직분은 다르나 동일한 계획을 도모하고 다른 사람이 군주와 같이 행하면 장점은 칭찬해주고 단점은 상처받지 않도록 덮어주어야 한다. 有與同失者, 則明飾其無失也。군..
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63권》3편 「노자(老子)․한비(韓非)열전」4 然韓非知說之難, 爲說難書甚具, 終死於秦, 不能自脫。 그러나 한비는 유세(遊說)의 어려움을 알아서「세난(說難)」편을 상세하게 지었어도 끝내 진나라에서 죽었으며 스스로 벗어나질 못했다. 說難曰., 凡說之難, 非吾知之有以說之難也., 「세난(說難)」에 이르기를., 모든 유세의 어려움이란 내 지식이 유세의 어려움이 있는 것이 아니고., 又非吾辯之難能明吾意之難也., 又非吾敢橫失能盡之難也。 또 내 구변의 어려움이 내 뜻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 아니며, 또 내가 거침없이 언변을 모두 구사하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다. 凡說之難, 在知所說之心, 可以吾說當之。 모든 유세의 어려움은 군주의 마음을 잘 알아서 나의 유세를 합당하게 하는데 있다. 所說出於爲..
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63권》3편 - 「노자(老子)․한비(韓非)열전」3 申不害者, 京人也, 故鄭之賤臣。學術以干韓昭侯, 昭侯用爲相。 신불해는 경읍(지금 하남성(河南省) 형양현(滎陽縣) 남동 20리)사람으로 정나라 하급관리였다. 법가의 학술로 한소후에게 유세하여 한소후가 재상으로 삼았다. 內脩政敎, 外應諸侯, 十五年。終申子之身, 國治兵彊, 無侵韓者。 신불해는 15년간 안으로 정치와 교육을 정비하고 밖으로 제후들에게 응대하였다. 마침내 신불해의 능력으로 부국강병하게 되어 한(韓)나라를 침략하는 자가 없었다. 申子之學本於黃老而主刑名。著書二篇, 號曰申子。 신불해의 학문은 황노(黃老: 황제와 노자의 학문으로 도가학파의 한 유파)를 근본으로 하고 형명(刑名: 형은 형체, 사실을 가르키고 명은 언론, 주장을 ..
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63권》3편 「노자(老子)․한비(韓非)열전」2 蓋老子百有六十餘歲, 或言二百餘歲, 以其脩道而養壽也。 아마도 노자가 160여세, 혹은 200여세였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도를 닦고 양생하여서라고 한다. 自孔子死之後百二十九年, 而史記周太史儋見秦獻公曰., 공자의 사후 129년 역사의 기록에 주나라 태사 담이 진헌공을 알연하고 말하기를.,“始秦與周合, 合五百歲而離, 離七十歲而覇王者出焉。” “처음 진나라는 주나라와 합하였다가 합해진지 500년 후에 분리되었고 분리된 지 70년이면 패왕이 출연할 것입니다.”라고 했다.或曰儋卽老子, 或曰非也, 世莫知其然否。老子, 隱君子也 어떤 이는 담이 즉 노라자고 말하고 혹자는 아니라고 말하는데 세상에선 그런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다. 노자는 은둔한 군자였..
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63권》3편 - 「노자(老子)․한비(韓非)열전」1 老子者, 楚苦縣厲鄕曲仁里人也。 姓李氏, 名耳, 字耼, 周守藏室之史。 노자는 초나라 고현(苦縣) 여향, 곡인리 사람이다. 성은 이씨, 이름은 이(耳) 자는 담(耼)인데 주나라 장서실의 사관이었다. 孔子適周, 將問禮於老子。老子曰“子所言者, 其人與骨皆已朽矣, 獨其言在耳。 공자가 주나라에 가서 노자에게 예(禮)에 대하여 묻고자 하였다. 노자가 대답하기를 “그대가 말하는 것은 그 육체와 뼈가 모두 썩어 버리고 다만 그 말만 남아 있을 뿐이오. 且君子得其時則駕, 不得其時則蓬累而行。 吾聞之, 良賈深藏若虛, 君子盛德, 容貌若愚。 또한 군자는 때를 얻으면 관직에 나가고 때를 얻지 못하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쑥대풀 같다오. 내가 들으니 뛰어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