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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3.14 《사기(史記)· 66권》6편 - 「오자서(伍子胥) 열전」3

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 66권》6편  - 「오자서(伍子胥) 열전」3 [각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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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오자서(伍子胥) 열전」



五年而楚平王卒¸ , 平王所奪太子建秦女生子軫, 及平王卒, 軫竟立爲後, 是爲昭王¸

오년이 지나서 초나라 평왕이 죽었다. 처음에,  평왕이 태자건에게서 빼앗은 진나라 여자의 아들 진()이 평왕이 죽자 후사를 이었는데 바로 소왕(昭王)이다.



吳王僚因楚喪, 使二公子將兵往襲楚¸ 楚發兵絶吳兵之後, 不得歸¸

오왕 료는 초나라의 국상으로 인하여 두 공자들로 하여금 병사를 거느리고 초나라를 습격하게 하였고 초나라는 오나라 병사의 후미를 끊어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다.



吳王內空, 而公子光乃令專諸襲刺吳王僚而自立, 是爲吳王闔廬¸ 闔廬旣立, 得志, 乃召俉員以爲行人, 而與謀國事¸

오왕의 도성이 텅비게 되자 공자광은 전제에게 오왕 료를 암살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니 이 왕이 바로 오왕 합려이다. 합려가 즉위하여 뜻을 이루자 오자서를 불러 외무대신을 삼고 더불어 국사를 도모하였다.



楚誅其大臣郤宛, 伯州犁, 伯州犁之孫伯嚭亡奔吳, 吳亦以嚭爲大夫¸ 前王僚所遣二公子將兵伐楚者, 道絶不得歸¸

초나라에서 대신 극완과 백주리를 주살하자 백주리의 손자 백비가 오나라로 도망쳐 와서 오나라에서 역시 백비를 대부로 삼았다. 전왕 료가 초나라를 정벌하라고 보낸 두 공자들은 퇴로가 차단되어 돌아오지 못했다.



後聞闔廬弑王僚自立, 遂以其兵降楚, 楚封之於舒¸

후에 합려가 왕 료를 주살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기야 초나라에 항복하여 초나라에서는 그들은 서() 땅에 제후로 봉했다.

 

闔廬立三年, 乃興師與伍胥, 伯嚭伐楚, 拔舒, 遂禽故吳反二將軍¸

합려가 즉위한지 3년 되자, 군사를 일으켜 오자서, 백비와 함께 초나라를 공격하여 서()땅을 함락시키고 급기야 오나라를 배반한 두 장군을 사로잡았다.



因欲至郢, 將軍孫武曰,. “民勞, 未可, 且待之¸” 乃歸¸

여세를 몰아 영까지 함락시키려고 하였다. 장군 손무가 백성들이 피로하니 불가합니다. 좀 기다리심이 좋을 듯 하옵니다.”라고 아뢰자 모두 회군시켰다.



四年, 吳伐楚, 取六與灊¸ 五年, 伐越, 敗之¸

4년에 오나라가 초나라를 정벌하여 초나라의 땅 육()과 첨()을 얻었다. 오년 후에는 월나라를 정벌하여 패하였다.



六年, 楚昭王使公子囊瓦將兵伐吳¸ 吳使伍員迎擊, 大破楚軍於豫章, 取楚之居巢¸

육년에 초나라 소왕이 공자 낭와에게 병사를 거느려 오나라를 정벌하게 하였다. 오나라에서는 오자서가 반격하여 초군을 예장에서 대파시키고 초나라의 땅 거소를 얻었다.



九年, 吳王闔廬謂子胥, 孫武曰.. “始子言郢未可入, 今果何如?”

9년에 오왕 합려가 오자서와 손무에게 말하기를.. “처음에 그대들이 초나라 영()로 진격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과연 어떠한가?” 하고 말했다.



二子對曰., “楚將囊瓦貪, 而唐, 蔡皆怨之¸ 王必欲大伐之, 必先得唐, 蔡乃可¸”

두 사람은 초나라 장수 낭와는 탐욕이 많아서 당()과 채()나라가 모두 원망하고 있사오니 왕께서는 대파시키고자 하시면 반드시 먼저 당과 채 나라를 얻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闔廬聽之, 悉與師與唐, 蔡伐楚, 與楚來漢水而陳¸

합려가 그 말을 듣고서 당과 채나라와 더불어 모든 군사를 동원하여 초나라를 정벌하러 가서 초나라와 한수를 사이에 두고 진을 쳤다.



吳王之弟夫槪將兵請從, 王不聽, 遂以其屬五千人擊楚將子常¸

오왕의 아우 부개가 병사를 이끌고 종군하기를 청했으나 왕이 허락하지 않았는데 급기야 자신의 소속 오천명을 이끌고서 초나라 장수 자상(子常)[각주:2]을 공격하였다.



子常敗走, 奔鄭¸ 於是吳乘勝而前, 五戰, 遂至鄭¸ 己卯, 楚昭王出奔¸ 庚辰, 吳王入鄭¸

자상은 패주하여 정나라로 달아났다. 이에 오나라는 승세를 타고서 진격하게 되었다. 다섯 차례의 전투 끝에 마침내 정나라에 이르렀다. 기묘일에 초나라 소왕이 달아나니 경진일에 오왕이 정나라로 입성할 수 있었다.



昭王出亡, 入雲夢., 盜擊王, 王走鄖¸

소왕이 도망쳐 나가 운몽 땅으로 들어갔다가 도둑에게 습격을 당하여 소왕은 운()나라로 달아났다.



鄖公弟懷曰.. “平王殺我父, 我殺其子, 不亦可乎!” 鄖公恐其弟殺王, 與王奔隨¸

운공의 아우 회().. “평왕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으니 나도 그 아들을 죽이는 것도 안 될 것 없소.”라고 말했다. 운공은 아우가 왕을 죽일 것이 두려워 왕과 함께 수나라로 달아났다.



吳兵圍隨, 謂隨人曰.. “周之子孫在漢川者, 楚盡滅之¸”

오나라 병사들이 수나라를 포위하고서 수나라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한천(漢川)의 주나라 자손들을 초나라가 모두 멸망시켰다라고 말했다.



隨人欲殺王, 王子綦匿王, 己自爲王以當之¸ 隨人卜與王於吳, 不吉, 乃謝吳不與王¸

수나라 사람들이 왕을 죽이려고 하여 왕자기가 왕을 숨겨놓고 자기가 스스로 왕이되어 당하려고 하였다. 수나라 사람들이 점을 쳐보니 왕을 오나라에 넘겨주는 것이 불길하다하여 오왕의 청을 거절하고 왕을 넘겨주지 않았다.



始伍員與申包胥爲交, 員之亡也, 謂包胥曰.. “我必覆楚¸”

일찍이 오자서와 신포서는 친구였는데 오자서가 달아나면서 포서에게 내가 반드시 초나라를 전복시키고 말겠다.”라고 말했다.



包胥曰.. “我必存之¸” 及吳兵入鄭, 伍子胥求昭王¸ 旣不得, 乃掘楚平王墓, 出其尸, 鞭之三百, 然後已¸

포서가..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지켜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나라 병사가 정나라로 들어가 오자서가 소왕을 잡으려고 하였어도 뜻을 이루지 못하자 초 평왕의 묘를 파헤쳐 그 시신을 꺼내 300번 채찍질 한 후에 그만두었다.



申包胥亡於山中, 使人謂子胥曰,.. “子之報讎, 其以甚乎! 吾聞之, 人衆者勝天, 天定亦能破人¸

신포서는 산중으로 도망하고 사람을 시켜 오자서에게 네가 원수 갚는 것은 아주 심하구나! 내가 들기에 뭇 군중이 하늘을 이겨도 하늘의 뜻이 정해지면 사람을 이길 수 있다고 하던데



今子故平王之臣, 親北面而事之, 今至於僇死人, 此豈其無天道之極乎!”

일찍이 평왕의 신하로서 북면하여 섬겼던 네가 지금 죽은 시신을 욕되게 하니 이 어찌 천리에 어긋남이 아니겠나!” 라고 말했다.



伍子胥曰.. “爲我謝申包胥曰, 吾日莫途遠, 吾故倒行而逆施之¸

오자서는.. “내대신 신포서에게 사례하고 내가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어서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해주시오라고 말했다.



於是申包胥走秦告急, 求救於秦¸ 秦不許¸ 包胥立於秦廷, 晝夜哭, 七日七夜不絶其聲¸

이에 신포서는 진나라로 달아나 위급한 상황을 알리고 구조를 요청했다. 진나라에서 들어주지 않자 7일간 밤낮없이 진의 궁정 앞에서 신포서의 통곡(痛哭)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秦哀公憐之, .. “楚雖無道, 有臣若是, 可無存乎!” 乃遣車五百乘救楚擊吳¸

진 애공이 가련히 여기면서.. “초나라가 비록 무도해도 이런 신하가 있으니 망할 수 있으랴!”라고 말하고 마침내 전차(戰車) 오백대를 보내어 오나라를 공격하고 초나라를 구했다.



六月, 敗吳兵於稷¸ 會吳王久留楚求昭王, 乃闔廬弟夫槪乃亡歸, 自立爲王¸

유월에 오나라 병사가 직()에서 패하여 오왕 합려가 오랫동안 소왕을 잡으려 머무르는 동안 합려의 아우 부개가 도망쳐 귀국하더니 스스로 왕이되었다.



闔廬聞之, 乃釋楚而歸, 擊其弟夫槪¸ 夫槪敗走, 遂奔楚¸

이 소식을 합려가 듣고서 초나라를 포기하고 귀국하여 그 아우 부개를 공격하였다. 부개가 패하여 달아나 마침내 초나라로 달아났다.



楚昭王見吳有內亂, 乃復入郢¸ 封夫槪於堂谿, 爲堂谿氏¸ 楚復於吳戰, 敗吳, 吳王乃歸¸

초나라 소왕이 오나라에 내란이 있음을 알고서 다시 영()으로 입성하여 부개를 당계(堂谿)에 봉하고 당계씨라고 하였다. 초나라에서 다시 오나라와 교전하여 오나라가 패하여 오왕은 귀국하였다.



後二歲, 闔廬使太子夫差將兵伐楚, 取番¸ 

그후 2, 합려는 태자 부차에게 병사를 일으켜 반(또는 파) 땅을 빼앗아았다.



楚懼吳復大來乃去郢徙於鄀¸ 當是時吳以伍子胥孫武之謀西破彊楚北威齊晉南服越人¸

초나라는 오나라가 다시 대거 침략해 올 것을 두려워하여 수도 영()을 떠나 약()으로 천도했다. 이때 오나라에서는 오자서, 손무의 모략으로 서쪽으로 강국 초나라를 격파시키고 북쪽으로 제나라와 진나라를 위협하고 남쪽으로 월나라 사람들을 복속시켰다.



其後四年, 孔子相魯¸

그후 4, 공자가 노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後五年, 伐越¸ 越王句踐迎擊 敗吳於姑蘇, 傷闔廬指, 軍郤¸

오년 후에 월나라를 정벌하였다. 월왕 구천이 반격하여 오나라를 고소(姑蘇)에서 패하게 하여 합려의 손가락에 상처(파상풍)를 입히자 군대는 퇴각했다.



闔廬病創將死, 謂太子夫差曰.. “爾忘句踐殺爾父乎?” 夫差對曰.. “不敗忘¸” 是夕, 闔廬死¸

합려는 병이 위중해 죽게 되었을 때 태자 부차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아비를 죽인 구천을 잊겠느냐?” 부차가 대답하기를.. “잊지 않겠습니다.” 이날 저녁 합려가 죽었다.



夫差旣立爲王, 以伯嚭爲太宰, 習戰射¸ 二年後伐越, 敗越於夫湫¸

부차가 왕위에 올라 백비를 태재로 삼고 군사들을 훈련시켰다. 이년 후 월나라를 정벌하여 부초산에서 월나라를 패망시켰다.



越句踐乃以餘兵五千人棲於會稽之上, 使大夫種厚幣遺吳太宰嚭以請和, 求委國爲臣妾¸

월왕 구천이 남은 병사 오천명을 회계산 위에서 머물면서 대부 종에게 예물을 후하게 보내고 나라를 맡기어 모두 신하(臣下)와 첩()이 된다는 조건으로 오나라 태재 비와의 화평을 청했다.



吳王將許之, 伍子胥諫曰.. “越王爲人能辛苦¸ 今王不滅, 後必悔之¸” 吳王不聽, 用太宰嚭計, 與越平¸

오 왕이 허락하려하자 오자서가 간언하여.. “월왕의 위인됨은 고통을 잘 견디는 사람입니다. 지금 왕께서 멸하지 않으신다면 뒷날 반드시 후회하게 되십니다.”라고 아뢰었다. 오왕은 듣지 않고 태재 비의 계책을 용납하여 월나라와 평화조약을 맺었다.

 

 








계속 -《사기(史記) ․ 66권》6편「오자서(伍子胥) 열전」4 -


  1. 사마천《사기(史記)》7권 전(傳) p 2171~2183. 10권 중화서국(中華書局)
    사마천의 <사기(史記)>형식은
    본기(本紀): 12 편(왕의 전기),
    표(表): 10 편(시대적 역사배경),
    서(書): 8 편(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 세가(世家): 30 편(식민지, 여러 지역의 당시까지의 역사),
    열전(列傳): 70 편(개인들; 저명한 정치가, 장군, 왕비, 조기탐험가를 연대순으로 배열)
    [본문으로]
  2. 자상(子常)은 낭와(囊瓦)의 자(字 본이름 외에 쓰이는 다른 이름)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聖枝: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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