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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오경(四書五經) : 2. 오경(五經) 1) 시경(詩經) 본문

사서오경(四書五經)

사서오경(四書五經) : 2. 오경(五經) 1) 시경(詩經)

성지 2013. 9. 5. 20:33

2. 오경(五經) 1) 시경(詩經)



- 필암 서원 확연루 - [출처] 문화재청




1. 시경(詩經)[각주:1]


《시경(詩經)》은 주나라 왕조(아래 도표 참조) 건국 초기부터 춘추시대 중기까지 약 4~5백년간에 걸쳐 황허(黃河)중류 중원(中原)지방에서 불려지던 민간의 '민요'와 사대부들의 '시가(詩歌)' 및 신께 제사 지내던 '송가(頌歌)'들이 실려있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으로 중국의 운문 문학이 여기서 출발되었다.



《시경(詩經)》은 국풍(國風), 소아(小雅), 대아(大雅), 송(頌)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는데 이 네 부류의 시가들은 각 제후국에서 유행했던 민간가요의 가사, 왕의 직할지에서 유행했던 시가, 왕실의 연회나 의식에 사용했던 시가, 종묘 제사에 불리우던 노래의 가사 등이다. 《시경(詩經)》은 공자(孔子 B.C 552~B.C 479)에 의해 편집되었다고 생각되었으나 수록된 시가의 내력이나 편집자, 편집시기 등은 매우 불확실하다.



(周) 왕조


 서주(西周)

  BC 1100 년경 ~  BC 771
 농업 신 후직(后稷) 후손

 문왕(文王)무왕(武王)
 주공(周公(섭정

 ()

 문왕(文王)
 
서이족(西夷族)

 동주(東周)

  BC 770 ~  BC 476
 오(), 초(), (), (),  (),

 진(), (), (),  (오패(戰國五覇)들이 활약한 시대.

 은(殷)의 후예 공자(孔)의 철환천하 시기.
 오() 합려(闔閭), () 구천(勾踐)
 서시(西施)의 사 발생시기

춘추(春秋)

 봉건(封建制)
 
정치 

 동주(東周)

 BC 475 ~ BC 221 전국칠웅(戰國七雄):

 ()()(),  ()().

 진(晉)은 ()()() 분열

 공자 사상을 계승한 맹자(孟子), 순자(荀子)의 활약 시기. 도가묵가법가음양가 등 제자백가(諸子百家) 사상의 전성기이다.

전국(戰國)

 주()
 
BC 256 멸망



《시경(詩經)》 원래 『시(詩)』또는 『시삼백(詩三百)으로 불리다 전국시대 말엽에 '경(經)'이란 칭호가 붙여지고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시경으로 호칭되었다. 이후 송대에 이르러 민간에서도시경으로 통칭되었다. 《시경(詩經)》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작자와 지어진 시기가 상세치 않으며 노래 가사가 대부분이었으며 원래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후세 사람들의 손을 거쳐 편집, 기록되었다고 전한다.



중국의 학자들은 성립 과정을 주나라 때의 제도를 통해 설명해왔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등 고대의 기록을 보면 봉건제도를 시행하던 주나라에서는 중앙의 천자가 각 지방의 풍속과 민심을 살피고 천자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제후와 지방관들이 정치를 잘하고 있는지 조사하기 위해 각지의 민가를 채집하는 임무를 맡은 관리를 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는 없으며 《시경(詩經)》에 수록된 시들이 문학 작품으로 간주된것이 아니라 정치적 자료로서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근대 이전까지 《시경(詩經)》의 편집은 공자(孔子)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인정되어 왔다. 공자가 시경을 산삭(刪削)했다는 주장은 그 진위 여부와 별도로 오랫동안 역사적 사실로 인정되어 왔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또 공자가 시경을 편집했다는 명백한 증거는 없지만 《논어(論語)》의 기록들을 보면 공자가 당시 《시경(詩經)》에 대해 깊은 관심과 더불어 전문적인 안목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자가 시경을 산삭(刪削)했다는 사실 여부를 떠나 《시경(詩經)》은 고대 시기 부터 이미 유가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고 분명히 문학작품이지만 문학작품보다는 먼저 유가경전으로 인식되었다는 사실이다.



현존하는 《시경(詩經)》은 311편이라고 기록되있지만 그 중 6편은 제목만 있고 가사(歌辭)가 없으므로 실제로는 305편을 수록하고 있다《시경(詩經)》은 풍(風), 아(雅), 송(頌)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풍(風)은 『국풍(國風』이라고도 하며 봉건제도 정치체제의 주나라 왕실의 15 제후들의 나라에서 불리던 민요(民謠)로, 지방의 속악에 해당한다.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한 연가(戀歌), 전란(戰亂)의 고통이나 사회적 불만 등을 노래한 사회시 등으로 되어 있으며 모두 160편이다.


- 아(雅)는 『하(夏)』와 통용되는 것으로 중원문화의 중심지인 황하지역 일대 즉 옛날 하나라 성에서 유행하던 하왕조 정통 음악이다. 『소아(小雅)『대아(大雅)』로 구분되며 소아(小雅)는 주로 연회용 음악을 말하고 『대아(大雅)』는  궁궐에서 대신들이 조회(朝會)할 때 사용하던 조회악이라고 한다. 모두 111편이다.


- 송(頌)은 신께 제사지내거나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송덕의식(頌德儀式)에서 무용과 함께 연주되는 시가로서 주송(周頌), 노송(魯頌), 상송(商頌)으로 구분되면 모두 40편이다.



《시경(詩經)》은 채시(採詩), 진시(陳詩), 헌시(獻詩)의 방법으로 수집되어졌으며 악관(樂官)에 의하여 음률에 맞게 관리되고 편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본래 3,000여 편이었던 것을 공자(孔子)가 중복된 것, 차례가 뒤섞인 것, 의미가 불분명한 것들을 삭제, 교정하여311편으로 간추려『시삼백(詩三百)으로 불려지는《시경(詩經)》이 되었을 것이라고 유추한다.



공자는 시(詩)가 인간의 감정을 순화시키고 도의심을 일깨우며 사물에 대한 지식을 넓히는데 매우 중요한 교재가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공자의 이러한 견해는 맹자(孟子)와 순자(荀子)가 다른 사상가들과의 논쟁에서 상대적으로 역사가 깊은 '유가사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거로서 《시경(詩經)》을 인용하는 '단장취의(斷章取義)'라고 불리는 방식을 많이 사용하였다.



이후 《시경(詩經)》 진()나라 시황(始皇) 때에 분서갱유(焚書坑儒)를 거치는 동안 산실되는 수난을 겪었지만 서한(西漢)시대에 삼가시(三家詩)라고 불려졌던 노시(魯詩), 제시(齊詩), 한시(韓詩)라는 서로 다른 세 가지 해설을 한 시경학파들이 생겨났고 또한 서한 말에 모씨(毛氏)에 의해서 설립된 모시(毛詩)도 생겨났지만 그 당시 모시는 삼가시에 밀려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모시(毛詩)는 동한시대 정현(鄭玄)[각주:2]《모시전(毛詩箋)》을 지어 보충 설명한 이후부터 훈고에 성실하고 역사적 사실에 가까운 장점이 인정되어 삼가시를 제치고 가장 좋은 평가를 받게 되어 급기야 삼가시는 학맥이 단절이 되기에 이른다. 당대에 이르러 공영달(孔穎達)[각주:3]모시정의(毛詩正義)를 지었다. 송대에 이르러 주자가《시집전(詩集傳)》을 지어 원, 명,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가장 권위있는 시경(詩經)주해로 통용되었다. 그러므로 현재 전해진 것은 모시(毛詩)의《시경(詩經)》이다. 




시경육의(詩經六義)란?


시경(詩經)서문(序文)을 비롯하여 주례(周禮태사직(太師職)에는 시의 여섯 의미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며 후에 유학자들은 시의 육의(六義)를 존중해 왔다육의란 풍(), (), (), (), (), (여섯 가지이다.



(), (), ()은 시의 내용과 성질을 말하는 것으로 흔히 이것을 시의 삼경(三經)’이라했고 흥(), (), ()는 시의 체제와 서술방식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을 시의 삼위(三緯)’라고 했다(), (), ()은 지방의 속요(俗謠)인 풍()과 조정의 정악(正樂)인 아()와 제례악인 송이다.



(), (), ()는 시의 비유법과 구성에 해당하는 것으로 흥()은 시상(詩想)을 일깨우기 위하여 시의 본래의 의미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다른 사물을 이끌어서 표현하는 연상기법을 말한다()는 “~는 ~와 같다.”라는 식의 비유적 표현기법이다그리고 부()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접 묘사하는 직설적인 표현기법이다사대부들은 시작(詩作때에 이러한 흥(), (), ()의 기법을 서로 복합적으로 연결하는 세부적인 기법으로 만들어 적용시켰다.




▷ 풍(風) -『위풍(魏風)


 5권석서(碩鼠)


碩鼠, 刺重斂也. 國人, 刺其君重斂, 蠶食於民, 不脩其政, 貪而畏人, 若大鼠也.

    석서는 과중하게 세금을 거두는 것을 풍자한 것이다. 백성들이 근주가 과중하게 세금을 걷어들여 누에가 뽕잎을 먹듯이 백성들의 이권을 차츰 차츰 먹어치우고 정사도 닦지 않고 탐욕스러워 두려워하게 만드는 큰 쥐와 같다고 풍자한 것이다.  

  

碩鼠碩鼠,           큰 쥐야 큰 쥐야,

無食我黍.           우리 기장 먹지 마라.

三歲貫女,           삼년 너를 섬겼는데

莫我肯顧.           나를 돌보지 않는구나!

逝將去女,           이제는 너를 떠나 

適彼樂土.           저 낙토(편안한 땅)로 가련다.

樂土樂土,           낙토여, 낙토여,

爰得我所.           거기가면 내 편히 살수 있겠지.


碩鼠碩鼠,           큰 쥐야 큰 쥐야,

無食我麥.           우리 보리 먹지 마라

三歲貫女,           삼년 너를 섬겼는데

莫我肯德.           나를 돌아 보지도 않는구나

逝將去女,           이제는 너를 떠나 

適彼樂國,           저 편안한 나라로 가련다.

樂國樂國,           편안한 나라, 편안한 나라

爰得我直.           거기 가면 내 바르게 살수 있겠지


碩鼠碩鼠,          큰 쥐야 큰 쥐야, 

無食我苗.          우리 곡식 먹지 마라

三歲貫女,          삼년 너를 섬겼는데

莫我肯勞.          나를 위해 주지 않는구나

逝將去女,          이제는 너를 떠나

適彼樂郊.          저 편안한 곳으로 가련다.

樂郊樂郊,          편안한 곳, 편안한 곳이여,

誰之永號.          거기엔 긴 한숨 없으리라!




▷ 아(雅) - 『소아(小雅)·녹명지계(鹿鳴之什)


9권「녹명(鹿鳴)


鹿鳴, 燕郡臣嘉賓也. 旣飮食之, 又實幣帛筐摇, 以將其厚意, 然後, 忠臣嘉賓, 得盡其心矣.

    녹명은 군신들이 귀한 손님을 맞이해 연회를 즐기는 시이다. 식사를 하고  또 폐백을 광주리에 담아서 그 두터운 뜻을 받들어 올려서 군신들과 귀한 손님이 그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呦呦鹿鳴,            매에 매애~ 사슴 우는 소리  

食野之苹.            들의 다북쑥을 먹는구나.

我有嘉賓,            내게 좋은 손님이 오셨으니

鼓瑟吹笙.            비파타고 생황불며 즐긴다네.

吹笙鼓簧,            비파타며 생황부는 가운데

承筐是將.            폐백 광주리 받들어 올리니

人之好我,            그 분은 나를 좋아라 하시며

示我周行.            위대한 도를 보여주시네.


呦呦鹿鳴,            매에 매에~ 사슴 우는 소리

食野之蒿.            들의 쑥을 먹는 구나.

我有嘉賓,            내게 아름다운 손님이 오시어

德音孔昭.            어진 소리 매우 밝으시다네.

視民不恌,            백성들에게 두터운 정 보여주시니

君子是則是傚.     군자들이 이것을 본받고 따르는 도다.

我有旨酒,            나에게 맛있는 술이 있어

嘉賓式燕以敖.     귀한 손님 잔치에 참여하여 즐기시네.


呦呦鹿鳴,           매에 매에~ 사슴 우는 소리

食野之芩.           들에 금풀을 먹는구나.

我有嘉賓,           나에게 귀한 손님 오셨으니

鼓瑟鼓琴.           비파타고 생황불며 즐긴다오.

鼓瑟鼓琴,           비파타고 생황불며 즐기니

和樂且湛.           화락하고도 또한 즐겁도다.

我有旨酒,           내게 있는 맛있는 술이 있어

以燕樂嘉賓之心. 귀한 손님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오.




▷ () - 주송(周頌)·청묘지계(淸廟之什)


19권「청묘(淸廟)


淸廟, 祀文王也. 周公, 旣成洛邑, 朝諸侯, 率以祀文王焉.

    청묘는 문왕에게 제사하는 시이다. 주공은 낙읍을 완성하고 제후들에게 조회를 받은 다음 제후들을 거느리고 문왕께 제사드렸다.


於穆淸廟,          아, 아름다운 청묘에

肅毊顯相.          공경스럽고 온화하고 덕 높은 대신들이 모였네.

濟濟多士,          수 많은 선비들이

秉文之德.          문왕의 덕을 기리며

對越在天,          하늘 저 너머로 대면하고자

駿奔走在廟.       분주하게 당에서 움직인다.

不顯不承,          나타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아도

無射於人斯.       사람들은 싫증내지 않는다네.




시경집전(詩經集傳)-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 목차 -


상권(上卷)


1

국풍(國風)

주남(周南)11

소남(召南)14


2

()나라19


3

()나라10

()나라10


4

()나라10

()나라21


5

()나라11

()나라7


6

()나라12

()나라10


7

()나라10

()나라4

()나라4


8

()나라7



9

소아(小雅)

녹명지계(鹿鳴之計)10

백화지계(白華之計)10


10

동궁지계(彤弓之計)10



* 하권(下卷)


11

기부지계(祈父之計)10


12

소민지계(小旻之計)10


13

북산지계(北山之計)10


14

상호지계(桑扈之計)10

15

도인사지계(都人士之計)10


16

대아(大雅)

문왕지계(文王之計)10


17

생민지계(生民之計)10


18

탕지계(蕩之計)11


19- ()

주송(周頌)

청묘지계(淸廟之計)10

신공지계(臣工之計)10

민여소자지계(閔予小子之計)11


20

노송(魯頌) 4

상송(商頌)5



다음 오경(五經) - 2. 서경(書經)을 올립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1. 참고문헌:《경서강독》p162~163. 1998. 《중국문학사ㅣ》p36~49 1997.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부. 《시경집전(詩經集傳)》上,下 성백효 역주, 전통문화연구회. [본문으로]
  2. 정현(鄭玄 127~200)은 시(詩), 서(書), 역(易), 예(禮), 춘추(春秋) 5경을 주석해내어 고문경의 모범으로 삼았다. [본문으로]
  3. 공영달(孔穎達, 574 ~ 648)은 자(字)는 중달(仲達)이고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나 수(隋)나라 양제(煬帝) 때 명경과(明經科)에 급제하여 관계에 나갔으나, 양제가 그의 재능을 시기하여 암살하려 하였다. 당나라의 태종(太宗)에게 중용되어 국자박사(國子博士)를 거쳐 국자감의 좨주(祭酒) ·동궁시강(東宮侍講) 등을 지내고, 태종의 신임을 받았다.

    문장 · 천문 · 수학에 능통하였으며, 위징(魏徵)과 함께《수서(隋書)》를 편찬하였다. 왕명에 따라 고증학자 안사고(顔師古) 등과 더불어 오경(五經) 해석의 통일을 시도하여《오경정의(五經正義)》170권을 편찬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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