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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오경(四書五經): 1. 사서(四書) 2) 논어(論語) 본문

사서오경(四書五經)

사서오경(四書五經): 1. 사서(四書) 2) 논어(論語)

성지 2011. 10. 28. 17:05
사서오경(四書五經) 1. 사서(四書) 2) 논어(論語)



1.「사서(四書)」

 2) 《논어 論語)》

논어(論語)는 공자(孔子)와 공자의 제자, 당시 내왕했던 다른 인물들과의 문답이나 언행과 행적을 기록한, 실존 고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전적(典籍)이다.논어는 한()대에 이르러 체재를 갖출 수 있었으며 당시논어의 판본은노논(魯論),제논(齊論),고논(古論,세 가지가 있었으나 지금의논어노논(魯論)만이 전해져 온 것이다.


 논어(論語)의 편찬은한서예문지(漢書藝文志)에 공자[각주:1]가 죽은 후에 공자문하의 문인들이 모여 편찬했을 것이라고 기록했다. 황간(皇侃)공자가 죽은 후 칠십 제자의 문도들이 공동으로 찬정했다.”고 기록했다. 또 정현(鄭玄)은 공자의 제자인 중궁(仲弓), 자유(子游), 자하(子夏)등이 찬정(撰定)했을 것이라고 하나 확실치는 않다.


유종원(柳宗元)은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의 문인이 찬정했을 것이라고 기록했다. 공자의 제자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렸던 증자(曾子)에 대한 기록으로논어8편 태백(泰伯) 3이 있다. 내용은 증자(曾子)가 임종 시에 자기의 문도들을 불러놓고 다음과 같은


내 발을 펴보아라! 내 손을 펴 보아라! 시경에 전전긍긍(戰戰兢兢)하여 깊은 못 가에 서있듯, 얇은 얼음을 밟듯 하라.’하여 항상 몸을 조심하였는데 이제부터는 내가 걱정을 면하게 되었구나 얘들아! -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

기록이 들어있는 것과 논어에 증자를 ()’라고 높여 부른 점 등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정자(程子)논어는 유자(有子)와 증자(曾子)의 문인들에 의해 지어졌다. 따라서 이들 두 사람을 부를 때에는 자()로서 높였다.”라고 했으나 논어를 간추려 낸 자에 대한 정설은 아직은 분명치 않으나 공자 문하의 제자들에 의한 기록과 대를 이은 제자에 의한 기록이 축적된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다.[각주:2]



  공자의 문도 논어11장 선진(先進)편의 십철(十哲)[각주:3]

1

덕행(德行)

안연(顔淵), 민자건(閔子騫), 염백우(冉伯牛), 중궁(仲弓)

  2

언어(言語)

재아(宰我), 자공(子貢)

  3

정사(政事)

염유(冉有), 계로(季路)

  4

문학(文學

자유(子游), 자하(子夏)




정자는 논어를 다 읽고 나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도 있고 다 읽은 뒤에 그 중에서 한 두 구절을 얻고서 기뻐하는 사람도 있으며 다 읽고 나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다 읽은 뒤에는 곧바로 자기도 모르게 손이 덩실거리고 발이 들먹거리는 줄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讀論語, 有讀了全然無事者, 有讀了後, 其中得一兩句喜者, 有讀了後, 知好之者, 有讀了後, 直有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者.-” 라고 하였다


논어(論語)에 관한 중요한 주석(註釋)은 한()대 공안국(孔安國)[각주:4]논어공씨훈해(論語孔氏訓解, ()나라 하안(何晏)[각주:5]논어집해(論語集解),논어정의(論語正義)()나라 황간(皇侃)논어의소(論語義疏)[각주:6], 송대 주자(朱子)논어집주(論語集注), ()대 유보남(劉寶楠)논어정의(論語正義), 우리나라 이익(李瀷)[각주:7]논어질서(論語疾書), 정약용(丁若鏞)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가 있다.




갈 래

  공자 문하(孔子門下)의 철학 사상의 발전  

 1

자하(子夏)

사서오경과
()사상에
대한 
연구

순자(荀子): 성악설. 외적 도덕기준과 구체적 규범을 강조. 예()를 내세움

실천적 측면에서 법가인 한비자(韓非子), 이사(李斯)에게로 사상이 계승됨.

()의 무제집권, 유학을 통치이념 기치(旗幟)로 내걸음.

진시황(秦始皇)의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사라진 문헌 복원과 경학발전을 주도한 오경박사(五經博士)의 활약으로 경학이 발전됨

()대 경학(철학)

1. 송학파: 양명학붕괴로 인함
2. 실학파: 송 이학에서 해방
3. 한학파: 경서 고증(考證)
4. 공양학파: 원시경학 추존

 2 

자사(子思)
사서오경과
() 사상에
대한
연구

맹자(孟子): 성선설.

()사상의 실천적 측면과,()사상의 내적 판단기준

 신유(新儒學 Neo-Confucianism) : 사서(四書)연구

이학(理學) : 새로운 철학의 인의(仁義)’를 우주의 원리까지 확대

* 북송
(北宋) 오자(五子)
1. 주돈이(周敦頤 1017~1073), 2. 소옹(邵雍 1011~1077), 3. 장재(張載 1020~1077),  4. 정호(程顥 1032~1086), 5. 정이(程頤 1033 ~1107),

* 이학의 집대성자 남송(南宋)의 주희(朱熹 1130~1200)

 심학(心學):
* ()대 육구연(陸九淵 1139~1193),
*
()대 왕양명(王陽明 왕수인; 王守仁 1472~1529)


 

주자
(朱子)가 주해 한 논어집주
 
- 목차 -
서설(序說)
1. 학이(學而)
2. 위정(爲政)
3. 팔일(八佾)
4. 이인(里人)
5. 공야장(公冶長)
6. 옹야(雍也)
7. 술이(述而)
8. 태백(泰伯)
9. 자한(子罕)
10. 향당(鄕黨)
11. 선진(先進)
12. 안연(顔淵)
13. 자로(子路)
14. 헌문(憲問)
15. 위령공(衛靈公)
16. 계씨(季氏)
17. 양화(陽貨)
18. 미자(微子)
19. 자장(子張)
20. 요일(堯日)





다음에 계속: 1.사서(四書)」3)《맹자(孟子)에 대하여 올립니다.



  1. 공자(孔子):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 춘추(春秋)시대 노(魯)나라 창평향(昌平鄕) 추(鄹)읍에서 노양공(魯襄公) 22년 BC551년 에 태어났다. [본문으로]
  2. 자료참조: 신완역 <논어> 명문당, <중국철학사 강요>- 臺灣開明書店印行- , <경서강독> 방송대학 출판부, <논어집주> 전통문화연구회. [본문으로]
  3. 십철(十哲): 10사람의 뛰어난 제자. [본문으로]
  4. 공안국(孔安國 ?~?): 중국 전한(前漢) 때 학자 자는 자국(子國). 공자의 제11대 손(孫)으로, 공자가 살던 옛집에서 발견된 ≪상서≫ㆍ≪예기≫ㆍ≪논어≫ㆍ≪효경≫ 따위의 책을 해독하고 이 책들의 주석을 남겼다. 이 때부터 고문(古文)학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본문으로]
  5. 하안(何晏 193~249): 왕필(王弼)과 더불어 위진(魏晉)의 현학(玄學: 老壯學)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관료 겸 사상가이며《논어집해(論語集解)》의 대표 편집자이다. 《논어(論語)》,《역경(易經)》,《노자(老子)》를 상통(相通)하게 유교의 도(道) · 성인관(聖人觀)을 노장풍(老壯風)으로 해석하였다.
    하안의 자는 평숙(平叔). 후한(後漢)의 대장군 하진(何進)의 손자이다. 어머니 윤(尹)씨가 후에 조조(曹操)의 부인이 된 탓으로 위나라 궁정 안에서 자랐고, 위나라 공주를 아내로 맞았다. 조상(曹爽)이 권력을 잡자 이부상서(吏部尙書)로 승진하였으나, 사마의(司馬懿)에 의해 조상 일족과 함께 살해되었다.하안이 왕필(王弼)과 주고받은 청담(淸談)은 일세를 풍미하였고, 그 뒤 언제까지나 '정시(正始)의 음(音)'으로 일컬어져 청담의 모범이 되었다. [본문으로]
  6. 황간(皇侃 488~545)이 하안(何晏)의 주석을 대상으로 다시 소(疏)를 붙인 주석서이다. 이 책은 남송(南宋) 때 실전(失傳)되었는데, 당(唐)나라 때 일본으로 전입된 초본(抄本)이 청(淸)나라 때에 중국으로 역유입(逆流入)된 책으로 논어 연구사에 귀중한 자료이다.
    또 송(宋)나라 때 형병(邢昺)이 왕명을 받고 지은 역저 《논어정의(論語正義)》에 중요한 참고서가 되었다는 평을 받는다. 황간의《논어정의》가 간행된 이후로 하안의《논어의소》는 다소 그 가치가 떨어졌다는 설도 있지만 육조(六朝) 이전의 고주(古注)가 많이 실린 그 가치는 여전히 귀중하다.
    자구(字句)의 훈고(訓詁)나 주석보다 해의(解義: 뜻풀이)의 논리에 중점을 둔 점이 특색이며 유가 중심의 해석이면서도 도가(道家)나 불가(佛家)의 용어도 제외하지 않았다. 청(淸)대 만들어진《사고전서(四庫全書)》경부(經部)에 들어있다.
    [본문으로]
  7. 이익(李瀷 1681~1763): 조선 후기 실학자. 본관은 여주(驪州), 자 자신(子新), 호 성호(星湖). 그의 학문은 아버지가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올 때 가지고 온 수많은 서적들이 밑바탕이 되었다.처음에는 성리학(性理學)에서 출발하였으나 차차 경직화된 학풍에서 벗어나 사회실정에 맞는 실용적인 학문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리하여 율곡 이이(李珥)와 반계 유형원(柳馨遠)의 학문에 심취하였고, 특히 유형원의 학풍을 계승하여 천문, 지리, 율산(律算), 의학(醫學)에 이르기까지 능통하였다. 이러한 관심분야는 한문으로 번역된 서학서(西學書)들을 접하면서 더욱 영역이 확대되고 깊이가 심화되었다. 인재등용에 대해서는 과거제도에만 의존하지 말고 훌륭한 인재를 천거해서 채용하는 공거제(貢擧制)를 함께 실시할 것과 병역문제는 향병제(鄕兵制)를 두고 나라를 지키기 위한 무기의 개발과 군마(軍馬) 양성, 성지수축 등을 추진해야 한다는 등 여려 방면에 걸친 일대 혁신을 주장하였다.
    그의 학문은 후손으로 종자(從子)인 이병휴(李秉休)와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李重煥) · 이가환 등으로 이어졌고, 문인으로는 안정복(安鼎福) · 윤동규(尹東奎) · 신후담(愼後聃) · 권철신(權哲身) · 정약용(丁若鏞) 등으로 계승 ·발전되었다.
    그의 저서로는 《성호사설》과 《곽우록》 이외에 《성호선생문집(星湖先生文集)》《이선생예설(李先生禮說)》《사서삼경》《근사록(近史錄)》 등이 있고, 편저에《사칠신편(四七新編)》《상위전후록(喪威前後錄)》《자복편(自卜編)》《관물편(觀物編)》《백언해(百諺解)》등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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