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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 가려는 욕망으로...

성지 2014. 8. 2. 22:13
- 이백마흔두 번째 이야기
2014년 7월 31일 (목)
천국에 가려는 욕망으로...
지금, 천국에 올라가는 복을 구하고자 학문을 한다면,
이는 그 학문하는 의도가 완전히 이익에서 나온 것이어서,
그것이 참되지 못함이 클 것이다.

今者, 欲求飛天之福, 而爲格物之學,
금자, 욕구비천지복, 이위격물지학,  
則此其爲學之意, 全出於利, 而其爲不誠大矣. 
즉차기위학지의, 전출어리, 이기위불성대의.

신후담 (愼後聃, 1702~1761)
 「영언여작(靈言蠡勺)」 
 『서학변(西學辨)』

 

 


  하빈(河濱) 신후담은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년) 문하에서 가장 뛰어난 성리학자로 꼽힙니다. 위의 말은 그가 지은『서학변』에 나옵니다. 그는 스물세 살 때, 성호를 만나 스승으로 모시는데, 성호를 통해 서학(西學) 즉 천주교를 접하고서 서학을 비판하는 글을 씁니다. 특히 이 부분은 명(明)나라 말기에 활동한 예수회 선교사 프란체스코 삼비아시(Francesco Sambiasi, 畢方濟, 1582~1649)가 지은 『영언여작』을 읽고 쓴 글로 『영언여작』 서문을 비판한 것입니다.

『영언여작』에서 프란체스코 삼비아시는 서양의 필로소피아(Philosophia, 費綠蘇非亞)를 격물궁리(格物窮理)의 학문으로 번역하고, 그 가운데 아니마(anima, 영혼)와 천주(天主)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선 아니마 즉 영혼이 천주를 향해 가는 것이 학문(필로소피아, 격물)의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필로소피아를 요즘은 철학(哲學)이라는 말로 많이 쓰는데 이것은 근대에 일본사람이 번역한 말입니다.

  프란체스코 삼비아시는 세상의 유한하고 한시적인 것들을 넘어서 영원한 하늘의 일을 탐구해야 하는 것이 필로소피아 즉 ‘격물의 학문’의 목표라고 말합니다. 프란체스코 삼비아시가 격물의 학문이라고 번역한 필로소피아나 신후담이 이해한 격물의 학문은 요즘 말하는 좁은 의미의 철학이라기보다는,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 전체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신후담은 학문하는 것이 천국 가려는 목적을 위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진리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고 이익을 따르는 것이어서 진실되지 못하다고 비판합니다. 진리 그것이 옳기 때문에 해야지, 그 결과로 복을 받고 천국에 가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신후담과 예수교 선교사가 만나서 이야길 했다면, 오히려 서로 합의를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회 선교사는, 올바른 신앙은 복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야하기 때문에, 예수가 그러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신자로서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성리학자 신후담은, 천도(天道)와 인간의 본성은 본래 올바르게 되어 있기 때문에 올바로 살아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 둘은 천주교 선교사와 성리학자라는 종교와 신념의 체계는 다르지만 진리 앞에서는 같은 길을 가는 진실된 사람일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종교는 동서를 가릴 것 없이 기복 종교가 된 것 같습니다. 복을 바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자신만의 복을 바라는 이기심에 빠진다면 올바른 종교가 아닐 것입니다. 이웃과 아픔을 같이하고 다른 이의 행복을 빌 때, 지상에 정의를 실현하려고 할 때 진실된 신앙이 될 것입니다.

  다음 달이면 프란체스코 삼비아시처럼 예수회 출신인 프란체스코 교황이 우리나라를 찾습니다. 가난한 자의 벗 프란체스코 교황의 방한을 환영하며, 이 땅에 진리가 발현되고 정의와 평화가 깃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글쓴이 : 남지만(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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