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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nd's Feet on High Places
위대한 과학자 신부 3인의 업적 본문
▨ 유전학 창시자 - 그레고어 요한 멘델 신부(Gregor Johann Mendel, 1822~1884,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
요한 멘델 신부는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 하이첸도르프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멘델은 1843년 브륀(체코 브르노)에 있는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 입회했다. 멘델은 기상학, 물리학, 수학 등 과학 공부를 자유롭게 했다. 19세기 초 오스트리아는 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던 때였다. 멘델은 25살에 사제품을 받고 빈 대학에서 물리ㆍ수학ㆍ생물ㆍ화학 등을 공부했다. 1854년부터 멘델은 10여 년간 수도원 뒤뜰에서 완두콩 유전실험에 몰두했다. 그는 키가 큰 것과 작은 것을 교배해 자신의 화분(花粉)을 받지 못하게 한 쪽의 수술을 제거했다. 종자를 다시 심었더니 키가 작은 것은 나타나지 않고 키가 큰 것만 나타났다. 키가 작은 것끼리 계속 교배했더니 모두 작았지만, 큰 것끼리 교배하면 3분의 1이 큰 것, 나머지는 작은 것으로 3대 1의 비율로 나타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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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은 브륀 자연과학 연구회원들에게 실험 결과를 보고하고 자신의 논문을 학자들에게 보냈다. 그러나 그의 천재성이 드러난 수학과 통계라는 수량 적용은 당대 저명 과학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멘델은 1868년부터 수도회 아빠스 직무 수행에 몰두했다.
유전학자 카를 코렌스와 돌연변이설을 주장한 드 브리스, 식물학자 체르마크가 1900년 멘델의 업적을 재발견했다. 카를 코렌스가 '멘델의 법칙'이라고 명명하면서 멘델의 위대성을 밝혀냈다. 이를 바탕으로 1905년 유전학이라는 단어가 처음 창안됐다.
▨ 빅뱅이론의 창시자 - 조르주 앙리 르메트르 신부(Abbe Georges Henri Lemaitre, 1894~1966)
벨기에에서 태어난 르메트르 신부는 학창시절 우주론에 관한 책을 읽고, 물리와 수학을 공부한 후 신학교에 입학했다. 1920년 루뱅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23년 사제품을 받았다. 영국 캠브리지대의 우주물리학 석사과정을 밟고 영국의 천문학자 아더 에딩턴(Arther Eddington)의 지도를 받았다. 1924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천문학을 공부했다. 1920~30년대는 정적인 우주론보다 팽창하는 우주론이 대두하던 시기였다. 1927년 르메트르 신부는 "우주의 팽창은 원초의 초원자(超原子)라는 엄청나게 밀도가 큰 상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즉 원시 원자들의 폭발로 시작됐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르메트르 신부는 아인슈타인을 찾아가 이론을 검토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당시 우주는 정지해 있다고 주장한 아인슈타인은 "당신의 자연과학적 통찰력이 혐오스럽다"며 거절했다. |
1931년 5월 뉴욕 타임즈는 "르메트르, 모든 에너지를 담고 있는 하나의 단일하고 거대한 원자에서 우리 우주의 탄생을 주장하다"는 기사를 보도하며, "르메트르 신부는 과학과 종교가 양립할 수 있음을 보여줬고, 생존한 최고 수리 물리학자 중 한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후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는 이미 우주가 팽창한다는 의미가 포함된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르메트르 신부는 최초로 우주가 단일한 원자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함으로써 우주 대폭발설(빅뱅이론)의 창시자가 됐다. 1934년 벨기에 과학계 최고상(Francqui Prize)을 받았고, 1960년 교황청 과학원 원장에 임명됐다.
▨ 고생물학자ㆍ지리학자 -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Pierre Teillhard de Chardin, 1881~1955, 예수회)
샤르댕 신부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예수회에 입회해 카이로의 예수회 학교에서 화학을 가르친 후 1911년 사제가 됐다. 1912년 파리에서 고생물학 교수를 만나 고생물학자의 길을 걸었다. 1922년 '프랑스 제3기 시신세 초기의 포유동물과 분포 지층'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파리가톨릭대에서 강의하며 국립박물관 고생물학 연구실에서 연구에 몰두했다. 1923년 그는 교회로부터 정통 교리의 충실성에 대한 의심을 받고 강단을 떠났다. 마침 예수회 에밀 리상(Emile Licent) 신부가 중국 톈진에 고생물학연구소를 설립해 그는 1923년 중국으로 파견됐다. 샤르댕 신부는 1931년 북경원인(Sinanthropus Pekinensis) 등 발굴 조사에 참여했다. 1940년 피에르 르로와 신부와 함께 북경 고생물학연구소를 설립하고 국제 고생물학지(Geobiologia)를 창간했다. |
「지식의 역사」 저자 찰스 반 도렌스는 샤르댕 신부에 대해 이같이 기술했다.
"그는 유명한 저서 「인간 현상」에서 세계를 조명하는 놀라운 그림을 제시했다. 그는 지구가 일련의 동심원으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했다. 지상권(Geosphere)은 단단한 땅이다. 그곳을 둘러싸고 딱 들어맞듯이 있는 곳이 생물권(Biosphere)이다. 생물권 너머에서 그보다 더 작은 두 영역을 둘러싼 또 다른 영역을 샤르댕 신부는 정신권(Noosphere)이라고 불렀다. 그리스어로 누스(nous), 즉 '정신'에서 비롯된 단어다. 지상권이 사물의 집단인 동시에 단일의 사물이기도 하듯이, 생물권이 생물의 집단인 동시에 어떤 면에서는 하나의 생물이기도 하듯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의 모든 정신은 별개의 것인 동시에 하나의 거대한, 단일한 지성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자료 출처 : 샤르댕 연구회ㆍ한국가톨릭대사전>
- [내용출처]신앙과 과학의 진리는 서로 통한다.
샤르댕 연구회 공개강좌 ''위대한 과학자 신부 3인의 삶과 업적''
과학과 종교는 양립할 수 있는가. 과학과 종교는 서로 고유영역을 지키며 상호 보완하는 관계로 나아갈 순 없을까.
빅뱅이론을 창시한 르메트르, 유전법칙의 선구자 멘델, 과학적 진화를 신학에 도입한 지질학자 샤르댕은 과학자 신부다.
샤르댕 신부의 사상을 연구하는 이문희(전 대구대교구장) 대주교와 자연과학계 교수 모임 '샤르댕 연구회'가 11, 18일 예수성심시녀회 대구 본원에서 과학과 신앙, 과학자 신부를 조명하는 공개강좌를 열었다.
김진식(토마스, 미생물학 전공) 전임 교수의 발제문을 바탕으로 위대한 과학자 신부들의 삶과 업적을 알아봤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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