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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nd's Feet on High Places
하느님 뜻을 행함이란? 본문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2015년 6월 25일(연중 제12주간 목요일) No.128
마태오 7,21-29 (주님의 뜻을 실천하여라, 내 말을 실행하여라, 청중의 반응)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주님,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키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내게서 물러들 가라, 불법을 일삼는 자들아!’ 하고 선언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휘몰아치자 무너져 버렸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마치시자 군중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자기들의 율법 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예언을 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기적을 행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이 행동은 하느님께서 일하실 때 이루어지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아무리 잘난 사람일지라도 하느님 없이 위의 일들을 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주도권은 오히려 그 분이 쥐고 계십니다. 여기에 덧붙이고 싶은 건 그런 은사는 그 사람의 인격적인 성숙함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우리 눈에 놀랍게 만 보이는 일들을 행하는 사람들을 필요 이상으로 떠 받드는 일은 하느님의 뜻이 아닌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은사가 아니라 그 사람의 삶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삶이겠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접하면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말을 살짝 바꿔보고 싶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려고 하는 삶으로 말입니다. 저는 표현을 완곡하게 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행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뜻이 나의 뜻이 되는 것이 순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관계에서의 인격적 성숙 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찾아 나서는 주님이십니다.
찾아오고 만나지는 사람들하고 만 예수님이 지내셨다면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권위는 쉬이 사그라졌을 것입니다. 공 생활의 대부분을 고통 당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지내셨던 주님이십니다.
그런 주님을 먼 발치에서 나마 계속 볼 수 있도록 따라가는 것도 우리 집에 모래가 가득해지지 않는 비결입니다.
<의정부교구 병원사목 현우석 신부>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공동체의 가장 선명하고 깊은 신앙까지도 그것 만으로는 어떤 사람을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 입으로 하는 신앙 고백에 만일 행동과 실천이 뒤따르지 못하면, 헛되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날’이라는 표현은 마지막 심판을 가리키고, 행동하고 실천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정말로 주님으로 인정한 사람임을 보여 주는 25,31-46 을 떠올리게 한다.
사랑과 정의는 머리로 알고 마음으로 느끼는 정도에 그쳐서는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한다. 온 몸으로 실천하는 단계로 건너가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 비뚤어진 사회와 세계를 올바른 하느님의 나라로 바꾸어 놓으려면 올바른 앎에서 올바른 실천으로 옮아갈 필요가 있다.
바위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산상 설교에서 제시된 하느님 나라의 정의에 따라 살고 활동하는 사람이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실천으로 건너감이 없이 앎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다.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삶과 현실을 실제로 변화시킬 수 없다. 어려움이 닥치면 쉽사리 물러서고 만다. 아는 것을 실천해야 굳세어지고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다. 예수님의 권위는 전통이나 체제에 있지 않고 당신 자신의 인격에 있다.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 게 가르치는 바를 당신 몸소 생활하고 실천하셨다. 아는 것과 말한 것을 삶과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참된 권위가 선다. 삶과 실천을 먼저 보여주고 나서 바른 말을 해야 먹혀들게 되어 있다.
복음 선포와 복음화는 말이나 글에 그쳐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복음에 따라서 생활하고 실천하면서 선포해야 복음 선포가 되고 복음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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