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편작
- 법가
- 성령 강림 대축일
- 사서(四書)
- 사서오경(四書五經)
- 기공
- 전교가르멜
- 가톨릭
- 티베트의 지혜
- 한시
- 한의학
- 노자
- 가톨릭정보
- 동양 도문화
- 영화
- 차크라(Chakra. cakra)
- 기경팔맥
- 한비자
- 고전산책
- 재속회
- 사기열전
- 형명(刑名)
- 사마천
- 성녀 예수의 데레사
- 득도
- 황제내경
- 쿤달리니
- 황노(黃老)
- 바르도 퇴돌 첸모(Bardo Thodol Chenmo)
- 시
- Today
- Total
Hind's Feet on High Places
장자(莊子)의 절대자유의 경지 1 본문
사마천의《사기》에 의하면 장자는 BC 4세기 후반 전국시대(戰國時代), 송(宋)나라 몽현(蒙縣)인으로 현재 하남성(河南省) 동부 상구현(商邱縣)사람이다. 양(梁) 혜왕(惠王), 제(齊) 선왕(宣王)과 같은 시대에 살았으며 몽지방의 칠원리(漆園吏)라는 말단 관직을 지냈다.
전국시대는 전쟁과 살육, 권모술수와 극악무도한 패륜이 공공연히 행해지던 불안과 절망의 시대였다. 송나라는 약소국으로 약자의 비애와 고통, 모욕과 굴욕, 전란과 기아를 피해 피난을 해야 했던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자유를 사고한 것이 《장자》의 저술인 것이다.
《장자》- 잡편을 보면 아내와 제자가 있었고 가난해서 남에게 돈을 빌리러 간일도 있었으며(外物篇) 이곳저곳 기워 입은 옷으로 위왕(魏王)을 만나러간 일도 있었다.(山木篇)
그런가하면《史記》의 기록은 재상으로 영입시키려는 초(楚) 위왕(威王)의 요청을 차라리 흙탕 속에서 자유롭게 살겠다고 말하며 관직을 거절한 이야기도 보인다. 저서《장자》는《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고도 불리는데 위진(魏晉)시대에 《노자》,《주역》과 함께 ‘삼현(三玄)’의 하나로 당시 명사들이 즐겨 담론하는 자료로 활용되었다.
오늘날 우리들이 보는《장자》는 곽상(郭象)의 주해서인데 곽상은 장자보다 약 600년 뒤인 위진 시대(220-420)의 학자로 《장자》주해서 33편을 썼다.
1. 내편(內篇) 7편,
제1편 소요유(逍遙遊)
제2편 제물론(齊物論)
제3편 양생주(養生主)
제4편 인간세(人間世)
제5편 덕충부(德忠符)
제6편 대종사(大宗師)
제7편 응제왕(應帝王)
2. 외편(外篇) 15편
제8편 병무(騈拇)
제9편 마제(馬蹄)
제10편 거협(胠篋)
제11편 재유(在宥)
제12편 천지(天地)
제13편 천도(天道)
제14편 천운(天運)
제15편 각의(刻意)
제16편 선성(繕性)
제17편 추수(秋水)
제18편 지락(至樂)
제19편 달생(達生)
제20편 산목(山木)
제21편 전자방(田子方)
제22편 지북유(知北遊)
3, 잡편(雜篇) 11편
제23편 경상초(庚桑楚)
제24편 서무귀(徐无鬼)
제25편 즉양(則陽)
제26편 외물(外物)
제27편 우언(寓言)
제28편 양왕(讓王)
제29편 도척(盜跖)
제30편 설검(說劍)
제31편 어부(漁夫)
제32편 열어구(列禦寇)
제33편 천하(天下)
서기 1세기경에 활동하였던 반고(班固)는《한서-예문지》에 《장자》는 내편 7, 외편 28, 잡편 14편 등 모두 52편으로 이루어 졌다고 기록했고 사마천은《사기》에 장자가 10여 만언을 썼다고 했으나 오늘날에 전하는 《장자》는 모두 33편 64,606자로 이루어져 있으니 이것을 보면 약 1/3정도가 유실되었다고 추정한다.
현재《장자》는 내, 외, 잡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분류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오늘날까지도 논란거리이다. 명말 청초의 학자 왕부지(王夫之)는 장자 본인의 글이 아닌 것이 많이 섞여 들어가 있다는 의미에서 ‘외편에는 위작이 많다.-外篇多僞-’고 논술하였다.
《장자》서의 진위(眞僞)는 왕부지보다 먼저 송대 소식(蘇軾)이 「盜跖」,「漁夫」,「讓王」,「說劍」등 네 편이 장자 본인의 저작이 아닌 것 같다고 추정하였다.
이후 위작을 들추어내는 기풍으로 청대의 고증학자들과 1920 년대 의고파학자(疑古派學者)들은 《장자》서의 많은 문제점들을 들추어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대체로 장자 본인의 작품이라고 보는 설이 지배적이다.
외편과 잡편은 장자 후학의 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장자학파의 논문집’과 같은 성격을 지니며 외편과 잡편이 철학적 자료로서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결론지어졌다.1)
- 이강수,《노자와 장자 ․ 무위와 소요의 철학》p111-113. [본문으로]
'중국고전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자(老子)의 《서승경(西昇經)》 제19 우제이장(右第二章) (0) | 2010.12.29 |
---|---|
노자(老子) 서승경(西昇經) (1) | 2010.08.19 |
장자(莊子) 소요(逍遙) 제물(齊物)의 절대자유의 경지 2 (4) | 2010.08.05 |
귀거래사(歸去來辭) - 본문 (0) | 2010.07.02 |
귀거래사(歸去來辭) 서문(序文) (0) | 2010.07.02 |
시득서산연유기(始得西山宴遊記) 영주팔기 - 유종원[당] (0) | 2010.06.29 |
유향의《열녀전》- 번희(樊姬)편 (0) | 2010.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