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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nd's Feet on High Places
성 말라키 오모게어(St. Malachy O'Morgair) 본문
베네딕트 16세(Benedict XVI)교황님의 퇴임에 대한
성 말라키 오모게어 2의 예언에 대한 추측을 하는
동영상과 글이 인터넷 사이트에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님 사임 발표문 전문』과
아일랜드의 말라키 성인에 대한 동영상을 올리는 것은
처해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여 대처하기 위함입니다. 3
《교황 베네딕토 16세 사임 발표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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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오늘 추기경 회의를 소집한 건 성인 3명을 시성하기 위한 것 뿐 아니라, 교회의 앞날과 관련한 중요한 결정을 전하기 위함 입니다.
하느님 앞에 나의 양심을 반복해 되돌아 본 결과, 저는 고령으로 더이상 교황직을 수행하는데 적합하지 않다는 확신에 이르게 됐습니다.
교황직은 그 본질적인 영적 특성 때문에 말과 행동 뿐 아니라 기도와 고난으로 수행돼야 한다는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너무나 빠른 세상의 변화와 독실한 신앙생활에 의문들로 베드로 성인을 잇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몸과 마음의 강건함 모두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최근 몇 달 동안 쇠약해지면서 제게 맡겨진 이 사도직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이 결정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면서 2005년 4월19일 추기경단이 내게 부여한 성 베드로 후계자 교황직을 2월28일 오후 8시에 내려 놓겠다는 것을 완전한 자유의지로 선언합니다.
저는 또한 교황을 사임하는 이런 행동의 심각성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제 교황직은 공석이 될 것이며 이어 새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비밀 추기경 회의)가 소집될 것 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동안 제게 보여준 사랑과 지지에 깊이 감사드리며 저의 허물이 있었다면 용서를 구합니다.
이제 교회를 우리의 최고 목자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고, 성모 마리아께서 새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들을 어머니의 사랑으로 도와주시길 간청합니다.
저는 또한 앞으로 남은 인생을 성스러운 교회에 봉직하는데 헌신할 것을 바랍니다.
Dear Brothers,
I have convoked you to this Consistory, not only for the three canonizations, but also to communicate to you a decision of great importance for the life of the Church. After having repeatedly examined my conscience before God, I have come to the certainty that my strengths, due to an advanced age, are no longer suited to an adequate exercise of the Petrine ministry. I am well aware that this ministry, due to its essential spiritual nature, must be carried out not only with words and deeds, but no less with prayer and suffering. However, in today‘s world, subject to so many rapid changes and shaken by questions of deep relevance for the life of faith, in order to govern the barque of Saint Peter and proclaim the Gospel, both strength of mind and body are necessary, strength which in the last few months, has deteriorated in me to the extent that I have had to recognize my incapacity to adequately fulfill the ministry entrusted to me. For this reason, and well aware of the seriousness of this act, with full freedom I declare that I renounce the ministry of Bishop of Rome, Successor of Saint Peter, entrusted to me by the Cardinals on 19 April 2005, in such a way, that as from 28 February 2013, at 20:00 hours, the See of Rome, the See of Saint Peter, will be vacant and a Conclave to elect the new Supreme Pontiff will have to be convoked by those whose competence it is.
Dear Brothers, I thank you most sincerely for all the love and work with which you have supported me in my ministry and I ask pardon for all my defects. And now, let us entrust the Holy Church to the care of Our Supreme Pastor, Our Lord Jesus Christ, and implore his holy Mother Mary, so that she may assist the Cardinal Fathers with her maternal solicitude, in electing a new Supreme Pontiff. With regard to myself, I wish to also devotedly serve the Holy Church of God in the future through a life dedicated to prayer.’‘
오산인터넷뉴스(osinews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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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말라카이 오모케어(St. Malachy O'Morgair 1094~1148)는 신비주의 수행을 하였던 순수한 구도자였으며, 로마 가톨릭교회에 많은 충격을 주었던 아머의 대주교였다. 그는 심미적 환몽(幻夢)을 통해서 미래를 내다본 예언이 그가 죽은 지 450년 만인 1590년 바티칸의 고문서 보관소에서 발견되어 도미니카파의 수도사 아놀드 드 비옹의 책으로 세상에 공개되었다고 한다.
[본문으로] - 성 말라키는 교사의 아들로서 아일랜드의 아마에서 태어나 성장하였다. 부모님과 사별한 후, 은수자이던 에이마(Eimar)의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25세때 성 켈수스(Celsus, 4월 1일)로부터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리즈모어(Lismore)의 성 말쿠스(Malchus) 주교의 지도하에 학업을 계속하였고, 1125년에 코너(Connor)의 주교로 착좌하였다. 그는 즉시 교구민들에게 신앙심을 일깨우고 북돋우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1127년 비적들이 뱅거(Bangor)를 침략했을 때 그는 다른 수도자들과 리즈모어로 피했고, 거기서 또 수도원을 세웠다. 1129년 성 켈수스는 아마 교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으나, 그 주교좌는 선임자 가문의 세습 관습 때문에 극심한 반발과 함께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래서 성 말라키 오모르는 아마를 떠나 데리 수도원으로 갔다가, 로마(Roma)에서 아마와 카셀 주교좌의 대주교 문장을 받았지만 교황 인노켄티우스 2세(Innocentius II)는 그를 아일랜드 교황 대사로 임명하였다. 이때 그는 아일랜드 최초의 시토회 수도원을 세웠다.
그는 임무를 마치고 귀향하던 중 클레르보(Clairvaux)에서 병을 얻어 성 베르나르도(Bernardus, 8월 20일)의 품에 안겨 운명하였다. 왕성한 저술가 성 베르나르도는 이후 <아마(Armagh)의 성 말라키의 생애>를 저술하였다. 구약성서의 예언자 말라키와 꼭 같은 예언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는 1190년 교황 클레멘스 3세(Clemens 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본문으로] - 《예언을 통해 본 징벌과 정화》저자 앨버트 J. 허버트, 번역자 요한 실비아. 가톨릭 출판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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