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오경(四書五經)

1. 경()의 유래[각주:1]

"경()"이라는 문자를 처음 볼 수 있는 것은 하면의 사진 속에 있는 서주(西周: BC1100-BC 771) 청동기인 종정(鐘鼎: 종이나 쇠로 만든 기물)에 새겨진 금문(金文)에서 부터이다. '경()'자는 다스린다는 뜻으로 이는 시경(詩經), 서경(書痙), 주역(周易), 예기(禮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 서주(西周) 말기작품; <괵계자백반(虢季子白盤)> 명문(銘)


 3. 서주(西周) 중기작품; <장반(墙盘)> 명문(銘)


4. 서주(西周) 말기작품; <산씨반(散氏盘)> 명문(銘)

 

1. 서주(西周: BC1100) 초기작품 <천망은(天亡殷)> 명문(銘)
이 동기(銅器) 명문(銘)은 주나라 무왕(武王)이 은(殷: 商)나라를 멸망시킨
사실을 기록한 가장 전형적인 서주초기의 작품이다.

 

 5. 서주(西周: BC1100-BC 771) 초기작품; <대우(大盂)> 명문(銘)


6.  서주(西周: BC1100-BC 771) 제3기 청동기 작품
<모공
(毛公)> 명문(銘) 32행 모두 498자



허신(許愼)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은 실을 짠다는 뜻이다. ‘는 의미부분이고 은 발음부분이다.-, 織也, , 巠聲.-”라고 기록되어 있다. ‘()’은 직물을 짤 때에 날실을 의미하며 씨실을 가리키는 ()’자에 상대되는 글자이다. 직물은 고정되어 있는 날실과 왕복 운동하는 씨실의 결합으로 온전한 직물이 짜여 진다.

 

()자는 날실이 고정되어 기준(基準)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맹자(孟子): 진심(盡心)군자는 경()에 돌아갈 뿐이다. ()이 바르게 되면 서민들이 일어서게 되고 서민들이 일어서면 사특한 것이 없어질 것이다.-君子反經而已矣, 經正則庶民興, 庶民興思無邪慝矣.-”라고 하였고 주자(朱子)1)의 경에 대한 주해는 ()은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요, 만세토록 바뀌지 않는 불변의 도이다.-, 常也, 萬歲不易之常道也.-”라고 하였다.

 

()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것이 아니고 시간의 경과에도 불구하고 불변적인 지속성을 지니고 있는 진리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한대(漢代) 유희(劉熙)석명(釋名)》2)에서는 경()을 경(; 지름길)이라 하고 지름길은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서 항상 쓸 수 있는 것과 같다.-如經路無所不通, 可常用也,-라고 설명하여 경()의 사방으로 소통할 수 있는 적용의 보편성을 보여주고 있다.

 

진일보하여순자(荀子)3):권학(勸學)학문을 어찌 시작하고 어찌 마쳐야 할지 그 수는 ()’을 읊는 것에서 시작하고 ()’를 읽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學惡乎始, 惡乎終, 曰其數則始乎誦經, 終乎讀禮.-”라고 하여 순자(荀子)는 학문의 시작은 시경(詩經)과 서경(書痙)을 읊는 것이고 학문을 끝내는 것은 예기(禮記)를 읽는 것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이처럼 ()’은 날실의 기준이 되는 불변성과 더욱 높은 도리의 항상성 및 보편성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다가 최고의 불변적인 진리를 기록한 문헌을 가리키는 말로 정착되었다.



2.
경서(經書)의 범위와 종목(種目)

사마천(司馬遷)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의 기록에 근거하면 공자가 공자 이전에 전해온 중국 문화의 전통을 정리하여 <육경(六經)>을 편찬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육경(六經)이란 명칭의 경전의 범위를 확인 할 수 있는 전적(典籍)장자(莊子): 천운(天運)을 위시한예기(禮記); 경해(經解),한서(漢書):무제기찬(武帝紀贊)에 기록이 있다.

 

장자(莊子): 천운(天運)
 
공자가 노자(노담)에게 저는 시경, 서경, 예기, 악기, 주역, 춘추 육경을 배웠습니다.-孔子謂老聃曰, 丘治詩書禮樂易春秋六經

예기(禮記); 경해(經解)
 
공자께서 그 나라에 들어가 교육의 정도를 알 수 있는 것은 사람됨이 온유돈후하면 시경을 배운 자이고 소통되어 먼 곳까지 아는 자라면 서경을 깨친 자이고 널리 어질게 다스리는 자는 악경을 배운 자이고 고요하고 면밀하게 헤아리는 자라면 역경을 배운 자이고 공손 검박하고 정중한 사람은 예기를 배운 자이다.-孔子曰 入其國, 其敎可知也, 其爲人也, 溫柔敦厚, 詩敎也, 疏通知遠, 書敎也, 廣博易良, 樂敎也, 絜靜精微, 易敎也, 恭儉莊敬, 禮敎也, 屬辭比事, 春秋敎也.”

한서(漢書):무제기찬(武帝紀贊)》에
효무제가 처음 등극하여 결연히 백가 사상을 퇴출시키고 유가의 육경을 한(漢)의 통치이념으로 내걸었다.-孝無初立, 卓然罷黜百家, 表章六經.”

 

장자(莊子): 천운(天運)예기(禮記); 경해(經解)에는 공통으로 육경의 종목이시경(詩經),서경(書經),예경(禮經),악경(樂經),역경(易經),춘추(春秋)로 되어있다. 그러나 한나라 초반에 경전을 재정리 하면서 무제(武帝)대에 오경박사(五經博士)가 설치되면서 사실상오경(五經)이 정착되었다.오경(五經)은 통상 육경에서악경(樂經)을 뺀 나머지를 가리킨다. 모든 경학자들은오경(五經)은 실제로 공자 이전 또는 공자로부터 시작된 경전으로 남아 있는 것을 일컫는 명칭으로 믿고 있다.

 

예기(禮記)는 현재예경(禮經)에 속하는 삼종 주례(周禮),의례(儀禮),예기(禮記)가운데 어느 것을오경(五經)에 포함시킬 것인지는 사학적 입장에 따른 그 차이성을 논하지만 일반적으로오경(五經)에서의 예()예기(禮記)를 가리킨다.

 

오경(五經)을 확장하면「구경(九經)이 성립한다.(),(),()과 함께 예()에 속하는 주례(周禮),의례(儀禮),예기(禮記)삼례(三禮)를 포함하고 또 춘추(春秋)을 포함하고 거기에좌씨전(左氏傳),공양전(公羊傳),곡량전(穀梁傳)삼전(三傳)을 포함하여「구경(九經)을 이룬다.

 

여기에서 (),(),()삼경(三經)이라 일컫는데오경(五經)가운데서 가장 기본적인 경전으로 인정된다. 이처럼구경(九經)삼경(三經),삼례(三禮),삼전(三傳)을 합하여 일컬어지는 명칭이다.

 

유가경전(儒家經典)의 가장 넓은 범주의 분류는십삼경(十三經)으로 일컫는다. 남송 이후에 생겨났는데 십삼경(十三經)이라는 명칭은 송()대 왕응린(王應麟)옥해(玉海)》4)에 처음 등장한다.십삼경(十三經)은 한()대의오경(五經)에다논어(論語),효경(孝經)을 합쳐칠경(七經)이라고 일컫기도 하였고구경(九經)에다가논어(論語),효경(孝經)을 합쳐십일경(十一經)이라고 했다.

 

()개성석경(開成石經)에서는십일경(十一經)이아(爾雅)를 더하여십이경(十二經)으로 삼았고 그 후 송()대에 이르러 여기에 다시맹자(孟子)를 더하여십삼경(十三經)을 이룬 것이다. () 십삼경주소(十三經注疏)를 합하여 새겨 넣어 십삼경(十三經)이 정착되었다.

 

()대에 정자(程子)5)와 주자(朱子)에 의하여 논어(論語)맹자(孟子)에다가예기(禮記)중의 한 편인대학(大學)중용(中庸)을 표장(表章)하여사서(四書)를 이루었다. 특히 주자가 대학중용에 장구(章句)를 나누어 주석(註釋)하고논어맹자를 주석하여사서집주(四書集註)를 이루어내어 사서(四書)는 공자가 산정한육경(六經)에 이르는 사다리 [계제(階梯)]6)로서육경(六經)에 선행하여 학습할 것을 주장하였다.


()대에 이르러 주자학이 관학(官學)으로 정립되면서사서(四書)의 비중이오경(五經)보다 커졌고 사서오경(四書五經)또는사서삼경(四書三經)을 병칭하여 경전의 기본범위로 삼아왔다. 그러나 유가 경전의 종목(種目)에 대한 견해는 2500여년을 경과하며 저자와 저서가 다양한 관계로 문헌에 따라 매우 다양한 양태를 드러내고 있다.


 
3.
사서오경(四書五經)의 종목

()대 이후 성립되고 정착된 경전의 체계는 가장 대표적인 형식이사서오경또는사서삼경이다. 현재에 이르러 통상사서오경으로 일컬어지는 종목은 다음과 같다. 

1.사서(四書)

1)대학(大學)
2)논어(論語)
3)맹자(孟子)
4)중용(中庸)


2.오경(五經)

1)시경(詩經)
2)서경(書經)
3)역경(易經)
4)예기(禮記)
5)춘추(春秋)

 


1) 주자(朱子): 중국 남송(南宋)시대의 이학(理學)의 대가 주희(朱熹: 1093-1163)로 자()가 원회(元晦), 중회(仲晦)이다. 그의 철학사상은 장기간 대단히 많은 추종자들이 탐구하였다. 유가(儒家) 경전을 광범위하게 연구하고 식견과 수양이 높은 문인들과 두루 교류하였다. 학문수양을 스승이 있다고 느끼면 아무리 멀어도 찾아가 배우는 성실함으로 일관하였다. 이학의 거두인 주렴계(周濂溪: 敦頤 1017-1073), 소강절(邵康節: 1011-1077), 장횡거(張橫渠: 1020-1077), 이정(二程)을 집대성하여 남송 이학(理學)을 완성한 도학자(주자학)가 되었다.

2) 석명(釋名): ()나라 말기(末期)의 훈고학자 유희(劉熙)가 지은 한어(漢語) 어원을 연구한 전문서적, 모두 27편으로 8권으로 나뉘어져있다. 유희의 자()는 성국(成國), 상해(上海: 지금 산동성(山東省) 유방(濰坊) 서남)사람이다.

3) 순자(荀子): 이름은 황(), 전국시대 조나라 사람으로 주()대 순백(純白) 공손(公孫)씨의 후예, 존칭으로 순경(荀卿), 손경(孫卿)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순자는 어려서부터 전적(典籍)에 박학달통하여 유가(儒家)의 학문을 배워 공자(孔子) 문하 자하(子夏), 자유(子游)의 학통을 전승한 한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4)옥해(玉海): 남송-원 왕조 교체기를 산 인물이자 송대(宋代) 1의 박학(博學)이라 일컫는 왕응린(王應麟. 1223-1296)이 박학굉사(博學宏詞)라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을 위해 편찬한 천문율력음악 등 21(), 240여류()로 분류한 백과사전의 형식을 띄운 전적이다. 문은 천문(天文율력(律曆지리·제학(帝學성문(聖文예문(藝文조령(詔令예의·거복(車服기용(器用교사(郊祀음악·학교·선거·관제·병제(兵制조공(朝貢궁실(宮室식화(食貨병첩(兵捷상서(祥瑞)로 나누었으며, 부록으로 사학지남(辭學指南) 이외에 왕응린의 저서가 첨부되었다.

이 책에서 음악에 관한 내용은 율력(律歷)음악(音樂)부록으로 대분된다. 율력편은 율려(律呂)()양형(量衡)에 관한 내용으로 되어 있고, 음악편은 악()123악장(樂章)악무(樂舞)사이악(四夷樂)악기(樂器)잡악기(雜樂器)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응린은 중국 남송의 유학자로, 경원부(慶元府) 출신이다. 호는 심령거사(深寧居士), ()는 백후(伯厚)이다. 왕응린은 경()()제자백가(諸子百家)천문(天文)지리(地理) 등을 깊이 연구하였는데, 특히 장고(掌故)와 고증(考證)에 밝았으며, 고증에 뛰어났다. 진덕수(眞德秀)의 제자인 왕야(>)에게서 학문을 전수받고, 누방(樓昉)에게서 수학하였고, 대주통판(臺州通判)비서감(秘書監) 등을 역임하였다. ()이 망하자 은거하여 강학과 저술활동에 전념하였으며, 저서는한제고(漢制考)』ㆍ『곤학기문(困學紀聞)』ㆍ『소학감주(小學紺珠)20여종이 있다.

5) 정자(程子): ()대 정명도(程明道;1032~1085)와 정이천(程伊川;1033~1107) 두 형제를 말한다. 모두 유교철학자 주염계(周簾溪)에게서 배워 ''()를 최고의 범주로 삼아 도학(道學)을 체계화하고 발전시켰다. 이들은 하늘()을 이()라고 하여 달이 냇물에 그 모습이 비치듯이 천하 만물은 이 유일하고 절대인 이()를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천리(天理)가 일정한 목적 하에 우주의 질서를 세운다고 하는 목적론적 세계관을 수립하였다.

6) 계제(階梯): 일이 진행되는 순서나 절차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명사











다음에 계속: 1.사서(四書)1)대학(大學)








  1. 참조; 경서강독(經書講讀) p 2-7 한국방송통신대학 출판부 1998. [본문으로]
Posted by 聖枝: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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