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nd's Feet on High Places

부활하신 예수님 본문

가톨릭 정보

부활하신 예수님

성지 2015. 4. 5. 17:46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클릭 클릭 클릭!!!



부활 성야 미사

독서후 부속가


파스카 희생제물 우리모두 찬미하세.

그리스도 죄인들을 아버지께 화해시켜

무죄하신 어린양이 양떼들을 구하셨네.

죽음생명 싸움에서 참혹하게 돌아가신

불사불멸 용사께서 다시살아 다스리네.

마리아, 말하여라, 무엇을 보았는지.

살아나신 주님무덤 부활하신 주님영광

목격자 천사들과 수의염포 난보았네.

그리스도 나의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너희보다 먼저앞서 갈릴래아 가시리라.

그리스도 부활하심 저희굳게 믿사오니,

승리하신 임금님, 자비를 베푸소서.




부활 대축일 미사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되살아나셨다.> 
+ 마르코 복음16,1-7 1 


안식일이 지나자,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그리고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무덤으로 갔다. 그들은 
“누가 그 돌을 무덤 입구에서 굴려 내 줄까요?” 하고 서로 말하였다. 그러고는 눈을 들어 바라보니 그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것은 매우 큰 돌이었다. 그들이 무덤에 들어가 보니, 웬 젊은이가 하얗고 긴 겉옷을 입고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 젊은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가 그분을 모셨던 곳이다. 그러니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렇게 일러라.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나는 죽지 않으리라, 살아남으리라. 주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리라”(화답송). “나는 죽지 않으리라.”는 이 한마디는 참으로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원치 않는 죽음을 맞아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물론이고, 그 가족도 사랑하는 이의 죽음 때문에 고통을 겪습니다. 죽음의 현실을 극복하고자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죽지 않는 신들에 관한 신화를 만들어 냈는데, 이 사실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는 천부적으로 영원한 삶에 대한 갈망이 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살아 있음에도 여러 가지 고통과 시련 때문에 자신에게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놓은 채 ‘이렇게 살기 힘든 세상 차라리 스스로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안락사, 존엄사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결코 “나는 죽지 않으리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느 편에 속합니까? 삶을 사랑하지만, 늘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는 현실 안에서도 부활 축제를 기쁘게 지낼 수 있습니까? 삶의 의미를 잃고 절망 상태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부활의 기쁨을 선포하는 증인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그와 같은 증인들의 모습을 봅니다. 그들은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 곳인지 압니다.


세상이 자기들의 스승이신 주님을 죽였고, 자기 자신들마저도 죽일 수 있고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래도 그들은 “나는 죽지 않으리라, 살아남으리라. 주님이 하신 일을 선포하리라.”고 외칩니다. 부활하신 분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분을 만난 이들은 결코 죽을 수도 없고 죽어서도 안 됩니다. 그들 또한 이미 죽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고,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제2독서 참조).


부활 대축일을 지내는 우리도 사도들의 마음처럼 빛과 생명으로 가득 채워 주시기를 간청해야겠습니다. 평소에 다른 사람보다 예수님을 더 인격적으로 사랑하던 요한만이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에서 부활하신 그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아 본 사람만이 사랑하는 분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과연 나는 막달라 여자 마리아처럼 감상에 젖어 모성애의 시각에서 빈 무덤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베드로 사도처럼 가부장적인 위치에서 이 빈 무덤을 관찰합니까? 아니면 요한 사도처럼 인격적인 사랑의 시각에서 이 무덤을 바라보고 믿게 되었습니까? 우리의 신앙은 모든 것이 끝장난 것처럼 보이는 빈 무덤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가톨릭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위일체 대축일  (0) 2015.05.31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0) 2015.05.29
성령강림 대축일  (0) 2015.05.24
파스카 성삼일  (0) 2015.04.03
주님 봉헌 축일  (1) 2015.02.02
누구에게나 길은 열려있다네  (0) 2015.01.02
경축 전교가르멜 창립 기념일  (0) 2014.11.07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