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63권》3편 「노자(老子)․한비(韓非)열전」2


 蓋老子百有六十餘歲, 或言二百餘歲, 以其脩道而養壽也。
 아마도 노자가 160여세, 혹은 200여세였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도를 닦고 양생하여서라고 한다.

 自孔子死之後百二十九年, 而史記周太史儋見秦獻公曰.,
 공자의 사후 129년 역사의 기록에 주나라 태사 담이 진헌공을 알연하고 말하기를.,

“始秦與周合, 合五百歲而離, 離七十歲而覇王者出焉。”
“처음 진나라는 주나라와 합하였다가 합해진지 500년 후에 분리되었고 분리된 지 70년이면 패왕이 출연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或曰儋卽老子, 或曰非也, 世莫知其然否。老子, 隱君子也
어떤 이는 담이 즉 노라자고 말하고 혹자는 아니라고 말하는데 세상에선 그런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다. 노자는 은둔한 군자였다.


老子之子名宗, 宗爲魏將, 封於段干。宗子注, 注子宮, 宮玄孫假, 假仕於漢孝文帝。
노자(老子)의 아들의 이름은 종(宗)인데 종은 위나라 장수로 단간(段干)을 봉읍으로 받았다. 종의 아들은 주(注)이고 주의 아들은 궁(宮)이고 궁의 현손은 가(假)라고 하는데 가는 한(漢) 효문제 때 벼슬했다.

而假之子解爲膠西王卬太傅, 因家于齊焉。
가(假)의 아들 해(解)는 교서왕 앙(卬)의 태부가 되었기 때문에 집이 제(齊)에 있었다.


世之學老子者則絀儒學, 儒學亦絀老子。

세상에서 노자의 학문을 배우는 자는 유학을 배척하고, 유학은 또 노자를 배척했다.


“道不同不相爲謀”, 豈謂是邪? 李耳無爲自化, 淸靜自正。

“도가 같지 않으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 했는데 어찌 이것을 말함인가? 이이(李耳)는 무위로서 저절로 교화되게 하고 청정하여 자연히 바르게 되도록 하였다.


莊子者, 蒙人也, 名周。周嘗爲蒙漆園吏, 與梁惠王, 齊宣王同時。

장자(莊子)는 송(宋)나라 몽인으로. 이름은 주(周)이다, 주는 일찍이 몽 칠원의 관리였다. 양혜왕, 제선왕과 동시대인이다.


其學無所不闚, 然其要本歸於老子之言。

그 학문은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그 요점은 본래 노자의 학문으로 귀착된다.


故其著書十餘萬言, 大抵率寓言也。作漁夫, 盜跖, 胠篋, 以詆訿孔子之道, 以明老子之術。

그러므로 그의 저서 십여 만언은 거의 우언(寓言)에 의거한다.「어부(漁夫)」,「도척(盜跖)」,「거협(胠篋)」을 지어 공자의 문도를 비방하고 노자의 학술을 천명하였다.


畏累虛, 亢桑子之屬, 皆空語無事實。

「외루허(畏累虛)」,「항상자(畏累虛)」등속은 모두 허구이며 사실이 아니다.


然善屬書離辭, 指事類情, 用剽剝儒, 墨, 雖當世宿學不能自解免也。

그러나 글의 분석과 정황에 대한 비유를 잘하여 유가와, 묵가를 공격하였으니 비록 경력이 많고 인망이 있는 학자라 하더라도 자연히 장주의 비난을 면할 방도가 없었다.


其言洸洋自恣以適己, 故自王公大人不能器之。

그의 말은 광대하고 심원하여 자기 마음대로였기에 왕공대인으로부터 인재가 될 수 없었다.


楚威王聞莊周賢, 使使厚幣迎之, 許以爲相。

초나라 위왕이 장주가 현(賢)하다는 소리를 듣고 사신을 보내 후한 예물로 재상으로 맞아들이도록 허락받게 하였다.


莊周笑謂楚使者曰., “千金, 重利., 卿相, 尊位也。

장주는 웃으면서 초나라 사신에게 말했다., “천금은 큰 재물이고 재상은 존귀한 자리지요.


子獨不見郊祭之犧牛乎? 養食之數歲, 衣以文繡, 以入大廟。

그대는 다만 교제 지낼 때 희생제물인 소를 보지 못하였소? 몇 년 동안 음식으로 길러져 수놓은 옷을 입혀 태묘로 들어가는데


當時之時, 雖欲爲孤豚, 豈可得乎? 子亟去, 無汚我。

이때는 비록 새끼돼지가 되려하여도 어찌 그리 할 수 있겠소? 그대는 급히 돌아가 나를 더럽히지 마시오.


我寧游戱汚瀆之中自快, 無爲有國者所羈, 終身不仕, 以快吾志焉。”

나는 차라리 더러운 도랑에서 스스로 즐겁게 놀지언정 나라를 소유한 자에게 억매이지는 안겠소, 종신토록 벼슬하지 않음으로 나의 뜻을 즐겁게 할 셈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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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聖枝: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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