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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17 '멀리 뛰려면'- 다산(茶山) 정약용의 명구
- 이백 네 번째 이야기
2013년 2월 14일 (목)
멀리 뛰려면
개구리도 뛰려고 할 때에는 몸을 잔뜩 움츠린다.

蛙之將躍 亦蹙而跼
와지장약 역축이국

정약용 (丁若鏞, 1762~1836)
「수인산축성의(修因山築城議)」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시문집(詩文集)』 제9권

 

  
  이글은 다산(茶山) 정약용이 수인산성(修仁山城) 수축을 논의한 글 중에 인용한 속담입니다. 수인산(修仁山)은 전남 강진현에 있는 산으로 서ㆍ남ㆍ북 삼면이 절벽인 천연의 요새지입니다. 고려 시대에 이미 산성이 축성되어 『동국여지승람』에, “고려 말기에 도강(道康)ㆍ탐진(耽津)ㆍ보성(寶城)ㆍ장흥(長興)ㆍ영암(靈巖)의 백성들이 모두 왜구를 피해 이곳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조 태종 때에 대대적으로 산성을 축성하였고, 선조 때에 재차 수축이 논의되었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오면서 산성에 대한 관심이 없어지고 오히려 수축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들이 내세운 이유 중의 하나는,

  “지방 번병(藩屛)을 지키는 신하는 마땅히 야전(野戰)으로써 직분을 삼아야 한다. 먼저 산성을 만들어 퇴축(退縮)하는 마음을 열어놓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다산은, ‘예[古]에 집착되어 지금을 모르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옛날 손빈(孫臏)ㆍ오기(吳起)ㆍ한신(韓信)ㆍ팽월(彭越) 등의 명장(名將)들이 야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군사가 훈련되었고 병기와 갑옷이 수선되었으며, 기강이 섰고 계획이 정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군사도 훈련되지 않았고 병기와 갑옷도 수선되지 않은 지금의 상황에서 적이 회오리바람이나 소낙비처럼 갑자기 침입해 온다면 비록 장양(張良)ㆍ진평(陳平)의 지혜와 관중(管仲)ㆍ악의(樂毅)의 재주가 있다 하더라도 도저히 대적할 도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한가하고 궁벽한 산속에 몸을 숨기고 안정된 방안에서 지혜를 짜며 적이 없는 땅에서 병기를 수선한 다음에 격문(檄文)을 군현(郡縣)에 띄워 군사를 불러 모으고 호걸들을 장려하여 큰 공을 세우도록 고무시킨다면 적의 예기(銳氣)는 차츰 둔화되고 백성의 뜻도 차츰 정해져서 승전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다산의 주장은, 성을 쌓는 것은 적을 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을 이기는 계책으로서 바로 ‘개구리가 뛰기 전에 우선 몸을 잔뜩 움츠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중국 속담에도, "날려는 새는 먼저 날개를 접고, 뛰려는 짐승은 먼저 다리를 구부린다[將飛者翼伏 將奮者足跼]"는 말이 있습니다. 또,

  "먹이를 잡으려면 먼저 발톱을 오그리고, 문채를 이루고자 하면 우선 바탕을 질박하게 한다.[將噬者爪縮 將文者且朴]"고 하였으니, 모두 같은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움츠리고 한발 뒤로 물러나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 동작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명분을 앞세워 서둘러 나아가기보다 실제의 형세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만반의 준비와 마음가짐을 갖추고 나아간다면 필경 더 멀리 나아가고, 한층 더 큰 행보가 될 것입니다.

 

글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Posted by 聖枝: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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