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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17 「노자(老子) ․ 한비(韓非)열전」3
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63권》3편 - 「노자(老子)․한비(韓非)열전」3



申不害者, 京人也, 故鄭之賤臣。學術以干韓昭侯, 昭侯用爲相。
신불해는 경읍(지금 하남성(河南省) 형양현(滎陽縣) 남동 20리)사람으로 정나라 하급관리였다. 법가의 학술로 한소후에게 유세하여 한소후가 재상으로 삼았다.


內脩政敎, 外應諸侯, 十五年。終申子之身, 國治兵彊, 無侵韓者。
신불해는 15년간 안으로 정치와 교육을 정비하고 밖으로 제후들에게 응대하였다. 마침내 신불해의 능력으로 부국강병하게 되어 한(韓)나라를 침략하는 자가 없었다. 


申子之學本於黃老而主刑名。著書二篇, 號曰申子。
신불해의 학문은 황노(黃老: 황제와 노자의 학문으로 도가학파의 한 유파)를 근본으로 하고 형명(刑名: 형은 형체, 사실을 가르키고 명은 언론, 주장을 의미하며 법가(法家의 법치사상)을 주장하였다. 저서 2편이 있는데 《신자(申子)》라고 일컬어진다.

◀ 먹(墨)



韓非子, 韓之諸公子也。喜刑名法術之學, 而其歸本於黃老。
한비자는 한나라의 공자로 형명과 법술의 학문을 좋아하였는데 그 학설의 근본은 황노(黃老)에 귀의한 것이다.



非爲人口吃, 不能道說, 而善著書。與李斯俱事荀卿, 斯自以爲不如非。비는 사람됨이 말을 더듬고 변론은 잘하지 못하였지만 저서는 뛰어났다. 이사와 함께 순자(荀子)를 스승으로 섬겼는데 이사는 스스로 한비보다 못하다고 여겼다.



非見韓之削弱, 數以書諫韓王, 韓王不能用。

한비는 한나라가 쇠약해지는 것을 보고 여러 번 한왕에게 간언의 글을 올렸으나 한왕은 이를 적용하지 않았다.



於是韓非疾治國不務脩明其法制, 執勢以御其臣下,

한비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힘쓰고 그 법제를 정비하고 권세를 장악하여 신하를 통제하며



富國彊兵而以求人任賢, 反擧浮淫之蠧而加之於功實之上。

부국강병의 정책으로 현자를 등용시키지 않고 도리어 허황된 간신을 등용시켜 실질적인 공로의 윗자리를 보태주는 것을 괴로워하였다.



以爲儒者用文亂法, 而俠者以武犯禁。寬則寵名譽之人, 急則用介冑之士。

유학자들은 경전으로 국가 법제를 어지럽히고 협사는 무력으로 국가의 금령을 범하고 국가가 안정되면 명예로운 유사들을 총애하고, 국가가 위급하면 갑주를 두른 병사를 등용한다.



今者所養非所用, 所用非所養。悲廉直不用於邪枉之臣,

지금 기르는 자들은 위급할 때 쓸 자가 아니기에 위급할 때 쓸 자로 기를 자가 아니라고 여겼다. 청렴하고 강직한 선비들이 사악한 신하들에 의해 등용되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였다.  



觀往者得失之變, 故作孤憤, 五蠹, 內外儲, 說林, 說難十餘萬言。

지난 일들의 득실의 변화를 보아서「고분(孤憤)」,「오두(五蠹)」,「내외저(內外儲)」,「세림(說林)」,「세난(說難)」편 등의 십여 만언을 저술 하였다.









- 계속 - 






Posted by 聖枝: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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