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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에 대한 연민과 용기

성지 2014. 6. 12. 23:17

- 이백서른여섯 번째 이야기

2014년 5월 8일 (목)
부끄러움에 대한 연민과 용기
부끄러움이란 … 잘 쓰면 군자가 되고 잘못 쓰면 소인이 된다.

恥者 … 善用之則爲君子 不善用之則爲小人
치자 … 선용지즉위군자 불선용지즉위소인

윤기(尹愭, 1741∼1826)

 「치(恥)」
 『무명자집(無名子集)』

 



  사람은 마음에 흡족하지 않거나 떳떳하지 못한 것이 있을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 완전무결한 사람이 아닌 이상 누군들 부끄러운 일이 없겠는가. 그렇지만 이 부끄러움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자신을 군자가 되게도 하고 소인이 되게도 한다. 군자는 자신에게 부끄러운 것이 있을 때 이를 고친다. 부끄러움에 대해 군자가 되는 길은 이렇듯 분명하다. 그러나 이런 뻔한 길을 가기가 쉽지 않다. 왜 그럴까. 부끄러움에는 복합적인 사회적 정서가 관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사회로부터 분리되지 않고 동화하려는 유전적 욕망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사회의 통념이나 도덕률에 일치하지 않는 상태에 있을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 날씬한 몸매를 선호하는 사회에서 뚱뚱한 사람은 자신의 몸매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기 쉽고, 자녀를 사회적으로 번듯하게 키우는 책임을 일정 부분 부모에게 요구하는 사회에서는 자녀가 문제적 행위를 저질렀을 때 부모로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 동화의 욕망은 그 부끄러움이 감출 수 없는 것에 관계되었을 때는 자기혐오와 모멸을 야기하고, 감출 수 있는 것일 때는 간교함으로 사실을 변명하거나 엄폐하도록 만든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사회의 통념이나 도덕률에서 벗어난 외톨이 나를 대면하는 일이다. 거울에 비친 모자라고 떳떳하지 못한 나의 민낯을 보는 일이다. 그래서 그 일은 불편하고 괴롭다. 자기혐오나 사실 엄폐는 이 불편함과 괴로움을 회피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자기혐오나 모멸을 통해 사회와 동화하고자 하는 자신의 숨은 욕망을 실망시켜 포기하게 하려 해도 욕망은 잠재워지는 존재가 아니며, 부끄러운 사실을 엄폐하여 사회와의 표면적인 동화를 실현하더라도 자기기만이라는 또 다른 부끄러움이 추가된다. 부끄러움이 이런 과정을 거치면 끔찍한 괴물로 변한다.

  부끄러움을 다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맹자는 “부끄러움은 사람에게 있어 중대한 것이다.[恥之於人大矣.]”라고 했고 공자는 『中庸』에서 “부끄러워 할 줄 아는 것은 용기에 가깝다.[知恥近乎勇.]”라고 하였다. 모자라고 떳떳하지 못한 나를 직시하는 괴로운 일을 감내하기가 뉘라서 쉽겠는가. 이런 괴로운 일을 하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자기 연민이 필요하다. 진정한 자기 연민 속에서 용기가 싹튼다. 그리고 그때라야 부끄러워할 줄 아는 힘이 생겨 부끄러워하는 것을 고칠 수 있다.

  얼마전, 사회적으로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운 일이 일어났다. 이런 일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혐오하고 관련 사실을 덮어 잊혀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소인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모자라고 떳떳하지 못한 우리를 먼저 측은히 바라보고 그 속에서 용기를 찾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글쓴이 : 오재환(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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