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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도 퇴돌 첸모(Bardo Thodol Chenmo) 3 본문

바르도 퇴돌(Bardol)

바르도 퇴돌 첸모(Bardo Thodol Chenmo) 3

성지 2012. 9. 5. 15:20

티베트의 지혜 - 바르도 퇴돌 첸모(Bardo Thodol Chenmo) 3[각주:1]


-  티베트 탕카  -



▷ 대승불교의 핵심적인 지혜의 가르침’ - 삼신(三身), 삼위일체(三位一體)


확고한 지혜가 말을 통제하고, 생각을 통제하고, 몸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자는 삼중제왕(三重帝王)이라고 불릴 만하다.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에 대해 삼중의 자기 통제력을 행사해 탐욕과 분노를 완전히 복종시킬 수 있는 자는 그것으로 인해 더없는 평화를 얻게 되리라.”마누법전[각주:2]



   편집자 에반스 웬츠는 "티벳 사자(死者)의 서()≫에는 근본적인 신비사상을 몇 가지 담고 있는데 대승불교의 핵심적인 교리이다.나의 스승이신 티벳 사자(死者)의 서()≫의 번역자 라마 카지 다와삼둡’은 그것들을 지혜의 가르침이라고 했다고 기록했다.

이 대승불교의 핵심적인 지혜의 가르침삼신(三身)’론이자 삼위일체(三位一體)’론이다티베트의 모든 명상체계에서 공(, 수냐타)을 깨닫는 것은 최고의 위대한 목적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은 어떤 조건에도 얽매이지 않는 다르마카야라고 불리는 진리의 몸(法身)’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또한 '공()'을 깨닫는 것은 스스로 존재하는 근본 자리를 깨닫는 것이고, 초월적 지혜의 완전한 의식을 획득하는 것이며 불성을 얻는 것이다.
 

다음 삼신(三身)에 대해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존재들은 세 가지 몸을 갖는데 그 중에서 진리의 몸인 '다르마카야(法身)'가 최상이고 나머지 두 가지는 완전한 능력의 몸’ '삼보가카야(報身)'인간으로 화신한 몸인 '니르마나카야(化身, 아바타)'이다.
 

다르마카야(法身)는 모든 성질을 초월해 있기 때문에 인간이 가진 어떤 언어로도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다만 무한한 대양(大洋), 고요하고 물결이 일지 않는 대양으로 상징될 뿐이다. 이 대양에서 생겨나는 안개구름과 무지개는 삼보가카야(報身)을 상징하고 무지개의 후광으로 둘러싸인 구름이 뭉쳐져 비가 내리는 것은 니르마나카야(化身)을 상징한다.
 

다르마(Dharma)지지하다’, ‘떠받치다라는 뜻의 동사 어원 '드리(Dhri)'에서 파생되었다. 다르마는 개체는 물론이고 우주 전체를 떠받치고 지탱하는 것을 뜻한다. 인간에게 있어 다르마는 바른 행동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른 행동은 진정한 앎에서 나온 결과이다.
 

고대 힌두교인 바라문교에 따르면 진리는 최고의 신 브라흐마’()이고 모크샤’(해탈)이며 니르바나’(열반)이다, 삼보가는 완전한 능력의 몸으로 즐거운 삶이고 니르마나는 건축의 과정이다. 바라문교의 체계에서는 다르마가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다.  그 다음 재산 또는 소유물의 뜻인 아르타인데 이것은 니르나마에 해당한다. 이것 다음에 삼보가가 있고 마지막이 모크샤 곧 해탈이다.
 

다르마카야는 형태를 갖지 않은 근원적인 지혜를 뜻한다. 모든 오류로부터 또는 타고난 것이든 우연적인 것이든 모든 장애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진정한 체험을 의미한다. 그 안에는 윤회계와 니르바나를 포함한 모든 본질이 담겨있다. 근원을 분석해 들어가면 윤회계와 니르바나의 이 두 세계는 의식의 양 극단 상태처럼 순수 지성의 영역에서는 본디 같은 것이다에반스 웬츠는 라마 카지 다와삼둡이 번역한 아디붓다 기원문이라는 문헌에서는 이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라고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윤회든 니르바나든 근원적으로는 하나, 곧 수냐타()이다. 다만 그 길이 둘이고 그 목적지가 둘일 뿐이다. 두 개의 길이란 아비드야(무지)와 비드야(지혜)이고 두 개의 목적지란 윤회와 니르바나이다. 모든 것들의 근원에 있는 그것은 스스로 존재하며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고, 순수하며 마음과 언어를 초월해 있다. 거기에는 윤회라는 말도 니르바나라는 말도 성립되지 않."
 

여기서 수냐타()은 다르마카야(法身)와 동의어이며 그것은 모든 관념을 초월해 있다. 그것은 마음으로 아무리 상상해도 알 수 없으며 니르바나와 윤회 같은 이원론적인 단어로도 그것을 나타낼 수 없다.

다르마카야(진리의 몸)’는 어떤 형상도 갖지 않은 꾸며지기 이전의 근원적인 지혜이다. 이것은 아디붓다(本初佛)’로 상징된다.
삼보가카야(장식으로 꾸며진 몸, 보상을 받은 몸)’는 지혜의 반영, 또는 장식을 갖춘 지혜이며 이것은 다섯 명의 명상하는 붓다(五禪定佛)’로 상징된다.
니르마나카야(변화된 몸, 탈바꿈된 몸)’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지혜이며 이것은 인간 붓다로 구체화되어 나타난다고타마 붓다가 니르마타카야의 대효적인 예이다.



-  티베트 수미산(聖山 카일라스)  -


  에반스 웬츠는 대승불교의 위대한 철학자 아슈바고샤(馬鳴 100~160년경)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각주:3]에 있는 삼신사상(三身思想)에 대해 다름과 같이 기록했다.
 

모든 여래들은 다르마 카야 그 자체이며 최상의 진리이고 어떤 상황이나 강제적인 행위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다만 세상 존재들의 보고 듣는 것 등을 통해 얻어지는 것들이 여래의 활동을 다양하게 한다.”- 謂諸佛如來 唯是法身智相之身 第一義諦 無有世諦境界 離於施作 但隨衆生見聞得益 故說爲用-
 

이러한 활동(다시 말해) 법신(法身)은 두 개의 측면을 지니고 있다. 현상을 분별하는 의식과 관계가 있다. 이 분별식을 통해서 일반 사람들과 성문(聲聞; 깨달은 자의 가르침을 듣고 진리를 깨달은 구도자)들과 산지불(酸支佛; 직접 깨달음을 얻은 구도자)들은 자기 안의 다르마카야를 인식한다. 이 측면을 삼보가카야라고 부른다.”-此用有二種 云何爲二 一者依分別事識 凡有二乘心所見者 名爲應身-

그러나 이 부류의 사람들은 삼보가카야가 그들 자신의 진화하는 의식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이 바깥 어딘가에서 생겨났다고 상상하고 그래서 그것을 육체적인 형태를 가진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삼보가카야(원래 다르마카야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는 제한하거나 측량할 길이 없다.”-以不知轉識現故 見從外來 取色分齊 不能盡知故-

다르마카야의 두 번째 측면은 업식(業識)과 관계가 있다. 업식을 통해서 모든 인간은, 진리를 찾고자 하는 최초의 의지에서 마침내 붓다의 경지에까지 이르는 동안 다르마 카야를 인식한다. 이것을 일러 지복의 몸(삼보가카야)이라고 한다.”-二者依於業識 謂諸菩薩從初發意乃至菩薩究意地心所見者 名爲報身-

다르마카야는 자신을 여러 가지 몸으로 나타낼 수 있는데 이는 다르마카야가 모든 육체적 형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此法身是色體故能現於色。-
 

   누구에 의해서도 창조됨이 없이 스스로 존재하며 형태가 없고 꾸며지지 않은 것이 다르마카야(法身)이다. 그 꾸며지지 않은 것으로부터 나온 꾸며진 것, 모든 완전한 속성이 하나의 몸으로 나타난 것이 삼보가카야(報身)이다.
 

하나의 몸에서 여러 개의 몸으로 분화되어 이 모든 생명 존재들 사이에 나타나는 것을 니르마나카야(化身)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윤회계라고 불리는 이 환영의 세계, 이 현상계, 이 세속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 사이에 그것은 다른 동료 생명체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 화신이 되어 나타난다. 이렇듯 완전히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고 이 세계, 또는 다른 세계에 환생하는 모든 깨달은 존재들을 우리는 니르마나카야(法身)’라고 부르는 것이다.


대승불교의 핵심적인 교리(지혜의 가르침삼위일체(三位一體)론

(三神) 

상 징 

동의어

 속 성

형 태 

  다르마카야
  진리의 몸(法身)
 아디붓다(本初佛사만타바드라(보현보살)  수냐타()

꾸며지기 이전 근원적 지혜본질

 알 수 없음

  삼보가카야
  지혜의 반영(報)

 다섯 명의 명상하는 붓다.
 오선정불(五禪定佛)

 오온(五蘊)  물질촉각감정의지지식

에테르공기
 불,  

  니르마야카야
  탈바꿈된 몸(化身)
 구체적인 지혜인간 붓다 ex) 고타마 붓다  아르타  장식을 갖춘 지혜  능력재산 
 소유물


- 도르제(금강저金剛杵) -


  탄트라 불교는 아디붓다(本初佛)’를 사만타바드라(보현보살)라고 부르는데 다르마카야와 연결시킨다. 사만타바드라는 처음도 끝도 없으며 모든 진리의 근원이고 티벳 불교가 숭배하는 완전한 선()의 아버지이다. 아디붓다, 곧 본초불이란 다르마카야를 상징하는 것으로 붓다상태의 맨 첫 상태를 말한다. 이 아디붓다에서 다섯 명의 명상하는 붓다(五禪定佛)들이 구체화되어 나온다고 아디붓다 학파에서는 설명한다.
 

티베트 불교는 이 최고의 붓다의 자리에 바즈라다라(금강지)’를 놓는다. ‘바즈라다라는 도르제[각주:4]를 가진 자이고 금강승 또는 진언승이라 불리는 신비적인 가르침의 신적인 해설자이다. 또한 그 자리에 아미타바(아미타불)’을 높기도 하는데 이는 무한한 빛의 붓다(무량광불), 무한한 생명의 원천(무량수불)이란 뜻이다.
 

그다음 삼보가카야의 자리에는 다섯 명의 명상하는 붓다(五禪定佛)들과 연꽃들의 신들과 평화와 분노의 신들이 위치한다. 이 모든 신들이 사후 세계의 중간 상태에서 사자(死者)에게 환영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말해 준다.
 

그다음의 니르마나카야에는 연꽃위에서 태어난 위대한 스승(蓮花上生師)이라는 뜻의 파드마삼바바가 자리 잡는다. 그는 티베트에서 최초로 바르도 퇴돌(Bardo Thodol)을 가르쳤으며 이 티벳 사자(死者)의 서()의 가르침을 따르는 모든 구도자들의 위대한 구루(스승)이다.

  편집자 에반스 웬츠는 바르도 퇴돌 첸모(Bardo Thodol Chenmo)의 번역자 라마 카지 라와삼둡은 티베트 불교의 고차원적인 가르침에 입문하지도 못한 사람들이 북방불교가 아디붓다(本初佛)’를 최고의 신으로 숭배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말했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번역자 라마 카지 다와삼둡은 아디붓다뿐만 아니라 다르마카야와 관련된 모든 신들을 인격적인 신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그 신들은 마치 태양이 지구의 물리적인 생명을 유지시켜 주듯이 모든 세계에 사는 온갖 생명을 가진 것들의 신성(神性)을 유지시키고 인간이 윤회계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해주는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힘, 또는 그 법칙이나 영적인 파장을 인격화 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현존하는 이 우주의 가없는 파노라마에서 어떤 모양이 나타나고, 어떤 소리가 울리고, 어떤 빛이 비치고, 또는 어떤 것이 의식되든, 그 전부는 삼신(三身)의 발현이며 놀이이다. 삼신은 모든 원인들의 원인인 삼중(三重)의 원리이고, 근원적인 삼위일체(三位一體)이다. 모든 것 속에는 영의 본질이 편재해 있는데, 이것이 곧 마음(眞我)’이다. 이것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며, 개체를 초월해있고, 물질을 초월해있으며, 파괴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삼신(三神)은 북방불교의 고차원적인 가르침에서 삼위일체(三位一體)와 같은 개념이다. 그러나 남방불교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삼위일체는 붓다(), 그의 가르침(), 그 가르침을 따르는 공동체()를 가리킨다. 하나는 신비적인 뜻의 삼위일체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적인 뜻의 삼위일체(三位一體)라고 볼 수 있다라마 카지 다와삼둡은 삼신 사상이 붓다시대로부터, 때로는 인도인 입문자나 때로는 티베트인 입문자들에 의해서 한 번도 중단됨이 없이 오랫동안 전해진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붓다는 단순히 그것을 그 이전의 붓다들로부터 전수받은 재발견자들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삼신(三身) 사상은 높은데서 낮은 데로, 니르바나의 문지방으로부터 윤회계 속으로 내려오는 위대한 스승들의 도()와 관련된 비밀 가르침들을 담고 있다. 한편 낮은 데서 높은 데로, 윤회계로부터 니르바나에 이르는 과정은 다섯 명의 붓다로 상징된다. 이들 각자는 신의 보편적인 속성을 인격화한 것이다.
 

이 다섯 선정불 속에는 완전한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신성한 길이 담겨있다. 불성으로 다르마카야 안에서 하나 됨으로 니르바나로 인도하는 길이 거기에 있다. 그것은 욕망을 버림(無慾)으로써 얻어지는 영적인 깨달음이다.“
 





다음
- 바르도 퇴돌 첸모(Bardo Thodol Chenmo) 4 - 계속

 



  1. [참조] ≪티벳 사자(死者)의 서(書) Bardo Thodo≫ 파드마삼바바 지음, 라마 카지 다와삼둡 번역, 에반스 웬츠 편집, 류시화 옮김 . - 정신세계사 - ≪티베트의 지혜≫ 소걀 린포체 지음, 오진탁 옮김 - 민음사 -
    [본문으로]
  2. BC 200∼AD 200년경 인도의 사상과 제도를 집대성한 힌두법전이다. 12장 2,684조의 산스크리트 운문으로 쓰여 진 지켜야 할 법(法 다르마)을 규정하였다.
    마누(Manu)란 인류의 시조(始祖)를 뜻하며, 일체의 법에 관한 최고의 권위로 숭앙받는 존재의 계시에 의하여 성립되었다고 전할 뿐 저작자와 연대는 미상이다. 인도 문화의 동남아시아 전파와 함께 동남아시아 각국에 영향을 끼쳤다.
    법 규정은 전편의 1/3을 차지하며 우주의 개벽, 만물의 창조부터 인간이 일생을 통해 행하여야 할 각종의례, 일상적인 행사, 조상에 대한 제사, 학문, 생명주기(生命週期)에 관한 규정, 국왕의 의무, 민법, 형법, 행정에 관한 규정, 카스트제도의 규칙엄수, 속죄의 방법 및 윤회(輪廻)와 업(業), 해탈에 대한 논의(論議)가 상세히 기재되어 있다.법률 조항 상속법, 혼인법, 재판절차도 들어 있지만, 바라문 계급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저작되었고 최근까지도 인도 사회의 규범으로 사용되고 있다. 참조; 인터넷 백과사전
    [본문으로]
  3. 지은이 아슈바고샤(Asva ghoṣa 馬鳴)는 인도 브라만 출신의 대학자였다. 인도의 학문 중심지, 마가다 지방 여러 도시에서 불교학자들과 논쟁에서 패한 후 불교에 귀의하였다. 그가 ≪대승기신론≫을 저술한 것은 불교사의 큰 업적으로 평가되며, 이로 인해 대승사상이 크게 떨쳤다.
    아직 이 책의 범어(Sanskrit) 원전이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두가지 한역본(漢譯本)은 진제(眞諦, Pramārtha, 499∼569)의 역본과 실차난타(實叉難陀, 652∼710)의 역본이 있다. ≪대승기신론≫은 대승불교의 개론서로 삼는 유명한 논서(論書)이다. 대승경전에 설해져 있는 모든 사상을 종합, 체계적인 논리를 세워 대승의 본질을 밝힌 것이다. 불교 전적(典籍)들은 대부분 분량이 많고 번거로운 문체, 지루한 설명이 많아 핵심 대의를 파악하기에 어려운 경향이 짙다. 하지만 ≪대승기신론≫은 간결, 논리 정연함, 문답식 내용전개를 하여 읽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이치의 심오함이 마음 깊이 새겨지게 한다.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는 철학 내지 심리학 저서와 같이 ‘마음이 어떤 것인지’ 에 대해 이처럼 자세히 설명해 놓은 논저는 찾아볼 수 없다. ‘마음 없는 사람이 없다’는 경전구절.., 마음을 지니고 인생을 살고,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마음을 모르는 것이 중생이라 한다.
    기원 1세기를 전후하여 지어진 저서에서 마음에 대한 논리정연한 분석을 해놓은≪기신론≫의 내용을 보고 감탄한 서양 학자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수행의 요지를 간명하고 구체적으로 설해서 수행의 지침을 명쾌하게 밝혀놓았다. [인터넷 백과사전 참조]
    [본문으로]
  4. 도르제(Dorje, 금강저金剛杵)는 티베트 라마들이 종교 의식에서 사용하는 도구로 번개라는 뜻이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무서운 힘을 가진 인드라 신의 무기이다. 윤회계의 여섯 세계에 대한 통치권을 상징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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