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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비친 달 본문

한시(漢詩) & 사(詞)

물에 비친 달

성지 2014. 11. 3. 13:49
- 아흔여덟 번째 이야기
2014년 10월 30일 (목)
물에 비친 달

물에 비친 달그림자 정체가 없건마는
빈 그림자에 속기도 쉬운 일이네 
청천 하늘에 뜬 밝은 수레바퀴가 
밝게 빛나는 본체인 것을

水月無定象
虛影易欺人
不識光明體
靑天轉素輪

안정복(安鼎福, 1712~1791)
「물에 비친 달을 읊다[水月吟]」 
『순암집(順菴集)』


   


  순암(順菴) 안정복은 18세기의 대표적 실학자입니다. 그는 스승 성호 이익(李瀷)의 경세치용(經世致用) 학풍을 이어받아 역사학 분야에서 실증주의적 연구를 통해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시인은 물에 비친 달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그리고 물속에서 흔들리며 이지러지는 달은 밝은 하늘에 있는 달의 그림자일 뿐인데도, 사람들은 그것이 달이라고 착각하기 쉽다고 말합니다. 밝게 빛나는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보지 못하고, 가변적인 허상에 속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당(唐) 나라 시인 이태백(李太白)은 술에 취해 채석강(采石江)에 비친 달그림자를 움키려다가 빠져 죽었으니, 허상에 속은 것입니다. 그런 그의 죽음을 두고 고래를 타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들 하는데, 그 말을 믿는 사람들은 또 허위 사실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속는 것이 되는데도 속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상이라는 것이 늘 청천(靑天)에 뜬 달처럼 밝게 빛나는 것만은 아니어서 있는 그대로 보려 하면 고통이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재적인 시인의 허망한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사람들은 이태백의 죽음을 두고 이야기를 꾸며내고, 또 그 꾸며낸 이야기를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믿고 싶어 합니다. 실상을 바로 보는 데서 생기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실상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는 쪽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실상을 바로 보고자 할 때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속을 것인가? 아플 것인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데에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실상을 봄으로써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도 있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아야 할 수도 있고, 금기를 범했다는 이유로 위험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는 한평생 “있는 그대로”를 추구했던 순암이 고통스러울지언정 실상을 바로 보는 “용기 있는 선택”을 하라고 권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글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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