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순일곱 번째 이야기
2013년 8월 22일 (목)



마음을 쉬는 것이 약보다 낫네

이미 지나간 아주 작은 일들도
꿈속에선 선명하게 생각이 나네.
건망증 고친 사람 창을 들고 쫓아냈다는
그 말에 참으로 일리가 있네.
아내를 놔두고 이사를 했다는 것도
우연히 한 말만은 아닐 것이네.
몇 년간 병든 채로 지내온 지금
기심(機心)을 내려놓는 것이 약보다 낫네.

往事細如毛
明明夢中記
操戈欲逐儒
此言殊有理
徙室或忘妻
非徒偶語爾
一病今幾年
息機勝藥餌

- 이색(李穡, 1328~1396)

「기심을 내려놓다[息機]」
『목은고(牧隱藁)』
 


  학교를 졸업하고 한참이 지난 후까지도 꿈속에서는 여전히 제한된 시간 안에 시험 문제를 못 풀어 쩔쩔맨 기억이 있습니다. 바로 잊혀져도 괜찮을 기억들이 오래 남아 꿈속에까지 나타나곤 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기억 장치는 내가 기억하기를 원하느냐 원치 않느냐와는 별 상관없이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잊고 싶기도 하고 잊고 지낼 수도 있었던 기억을 누군가가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다시 떠올리게 하는 일을 겪는다면 창을 들고 그를 쫓아냈다는 이야기에도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건망증을 고쳐준 사람을 창을 들고 쫓아냈다는 이야기는 『열자(列子)』「주목왕(周穆王)」에 나옵니다. 송(宋)나라 양리(陽里)에 화자(華子)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중년에 건망증이 생겨 아침에 있었던 일을 저녁이면 잊고 저녁에 있었던 일을 아침이면 잊었습니다. 길을 가다가는 걷는 것을 잊었고 방안에서는 앉는 것을 잊었습니다. 조금 전에 일어났던 일을 지금 모르고, 지금 일어나는 일을 조금 지난 후엔 몰랐습니다. 온 집안이 이를 걱정하여 점쟁이를 찾아가 점을 쳐 보기도 하고, 무당을 찾아가 빌어 보기도 하고, 의원을 찾아가 고쳐 보려고도 했으나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노나라의 한 선비가 화자의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키는 비방을 써서 그의 병을 고쳐 주었습니다. 그런데 화자는 막상 기억력을 되찾자 크게 노하여 처를 내쫓고 자식들을 벌주고 창을 들고 달려가 선비를 쫓아 보냈습니다. 건망증이 있었을 때에는 천지(天地)가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는데, 갑자기 의식이 돌아와 지난 수십 년 동안 얽히고설킨 복잡한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게 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알면 복잡해지고 복잡해지면 괴로운 세상, 모르고 사는 게 약이었는데, 그런 맘은 모른 채 병을 고친다며 번뇌의 바다에 다시 빠뜨렸으니 분하고 분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내를 놔두고 이사했다는 이야기는 『공자가어(孔子家語)』「현군(賢君)」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공자(孔子)에게 건망증이 심한 사람은 이사하면서 처를 데려오는 것도 잊는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냐고 묻자, 공자는 그건 심하다고도 할 수 없으며 정말 심한 경우는 걸왕(桀王)처럼 자기 자신을 망각하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자신을 망각하는 것에 비하면 아내를 두고 이사하는 정도는 건망증 축에도 못 낀다는 말로 도리를 망각하고 처신을 잘못하는 것을 강하게 경계한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이즈음 목은 선생은 많은 생각으로 마음이 산란해지는 괴로움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건망증을 고쳐준 사람에게 창을 휘두른 일을 두고 그것도 이해가 간다고 하고, 아내를 놔두고 이사한 것에 대해서도 그런 정도의 건망증은 있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은근히 자신도 생각을 잊고 싶어 함을 내비치고 나서, 생각이 많은 것이 원인이 되어 생긴 병에는 생각을 쉬는 것이 그 어떤 약보다도 낫다고 처방합니다.

  생각이 지나치다 싶을 때에는 생각을 쉬는 것보다 좋은 보약은 없습니다. 옳으니 그르니, 이로우니 해로우니, 나니 너니, 좋으니 싫으니를 따지는 기심(機心)을 내려놓고 정신을 온전히 쉬게 한 뒤라야 시비(是非)와 이해(利害)와 관계와 지향에 대해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글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Posted by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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