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처럼 빵을 만드는 기적(물질창조)을 이루신 요한 보스꼬성인
각별한 사랑의 친밀감으로 소년들은 보스코 신부를 ‘돈 보스코’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삶을 의지하였다. 그래서, 처음 수도회 설립의 뜻을 젊은이들에게 밝혔을 때, 많은 젊은이들은 수도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깊이 파악하지도 않고 단지 돈보스코와 함께 일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일생을 바칠 수 있다고 하여 1859년 살레시오 수도회는 1869년 교황청의 정식 승인을 받게 된다.
보스코 신부는 살레시오 수도회에 이어 ‘살레시오 수녀회’와 평신도 단체인 ‘살레시오 협력자회’를 창설하여 남여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사도직의 기틀을 확고히 다졌다. 청소년들 특히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해 학교, 기숙사, 기술학교, 주일학교, 야간학교 등 다양한 교육기회를 제공한 요한 보스코 신부는 19세기의 가장 훌륭한 교육자이며, 동시에 2천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한 경이로운 작가이고, 사회변혁의 순간에 교회를 적극적으로 옹호한 호교론자이며, 청소년 교육이라는 새로운 영성을 교회안에 심은 대영성가이기도 하다.
“나는 청소년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며, 공부하고, 나의 생의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라는 확신처럼 돈 보스코는 자신의 모든 것을 청소년 특히 보다 가난한 청소년을 위해 다 내어주고 1888년 1월 31일에 선종한다. 그리고 1934년 부활절,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성인으로 반포되어 ‘청소년들의 아버지요 스승’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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